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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란

by 별이언니


한 사람을 위한 마음


- 한 사람을 위한 마음

- 넌 쉽게 말했지만

- 멀리 떨어진 곳의 이야기

- 일상생활

- 사라진 것들 그리고 사라질 것들

- 준과 나의 여름

- 그냥, 수연

- 나 어떡해

- H에게




유리로 만든 공을 상상한다. 유리를 깎아 만든 공을 상상한다. 유리를 깎은 공의 표면은 매끄럽지 않다. 손톱만한 거울들이 경계를 이어나가는 조그마한 행성을 떠올린다. 나는 거인이 되어, 우주의 신이 되어 유리공을 주워든다. 굽어본다. 산산히 깨어진 얼굴이 오늘 그 행성의 기후다. 손톱만한 크기로 조각난 무표정이 커다란 구름이 되어 행성의 하늘을 덮는다.



유리파편 위에 무릎을 싸안고 앉아 요상한 오늘의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이 있다. 그는 문득 그를 살짝 들어 옆 유리파편에 옮겨보기로 결심한다. 옆 유리파편 위에 또다시 - 창을 열고 요상한 오늘의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이 있다. 남의 집이라 창문을 바꾸기가 뭣해서 다세대 주택의 다른 입주민들이 언제 창문을 열고 닫는지 알고 있는. 벌초를 다녀오는 김에 그는 문득 그를 살짝 들어 옆 유리파편에 옮겨보기로 결심한다. 열어보지도 못한 추억상자를 앞에 두고 울고 있다가 사소한 모든 것을 지니고 움직이면서도 울음을 터뜨리는 죽은 사람이 되어보기도 하고. 그를 살짝 들어 옆 유리파편에 옮기면 불고기양념소스로 만든 떡볶이를 먹으며 엄마가 없어서 닮은꼴인 세 여자가 둘러앉아있는 어느 여름이 되기도 한다.



특별한 간절함도 없이, 특별한 간절함이 없는 것이 더 간절한 듯이, 덤덤하게 오늘 밤 눈을 감고 잠이 들고 운이 좋으면 내일 아침 눈을 떠 현관을 연다. 유리파편 위의 옹기종기, 만날 수 없지만 왠지 예전에 우리 어디선가 본 적 없던가요, 뒤돌아 멀어지는 뒤통수를 보며 중얼거리고픈 기시감.



이렇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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