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라카미 하루키 <스푸트니크의 연인>

by 별이언니

아름다운 것과 맞닿으면 서서히 희미해진다.

스푸트니크에 실려 무중력 공간으로 올라갔던 개의 까만 두 눈은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소설에서 누군가 무겁게 말했다. 손에 든 등불을 무심코 불어끄는 순간, 당신은 걷던 길에서 내려와 영원한 어둠 속을 헤매게 된다고.

이 소설은 그렇게까지 절망적이지는 않지만.

관람차에 갇힌 뮤가 심장이 멎는 기분으로 바라보았던 거울 한 장 너머의 뮤 - 풍성한 머리는 검고 그 안에 흘러넘치는 정념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럽혀지고 그래서 아마도 피아노를 계속 칠 수 있을 것 같은 - 를 목격하고 모두 타올라 재가 된 것처럼 머리카락이 모조리 하얗게 바래버렸더라도, 뮤는 염색을 했고 완벽하게 미소지었고 스미레를 벼락같은 사랑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뮤는 거울 너머의 뮤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어쩌면 잡아당기고 있었다. 스미레는 너머로 건너가 뮤를 만나고 아마도 사랑에 빠지고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함께 나누며 비옥한 궁륭 아래 잠들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스미레가 뮤의 남은 그리움, 가느다랗게 연결된 실을 모조리 거두어 거울 너머로 건너가고 뮤는 완전한 어둠으로 들어간다. 하얗게 텅 빈 '뮤' 가 된다.

하지만 홍당무의 조그만 손을 느끼고 그 손가락과 손등의 뼈들을 느낀 후 여자친구와 헤어진 나는 다시 스미레를 만난다.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으며 우여곡절 끝에 같은 세계의 달빛이 비추는 공중전화부스에서 새벽 세 시 반에 전화를 거는 스미레를. 스미레는 가져가버린 '나'를 데리고 돌아와 다시 합치시켰다.

등불을 끄는 순간, 어둠을 헤맬지는 모르지만.

사랑, - 그래,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 은, 아니, 어느 고독이 맞닿은 기묘한 시간, - 그래, 이것을 존재라고 부를 수 있다면 - 은 그 어둠 속에서 다시 어슴프레한 길을 보여준다.

우리는 상실되고, 어느 차원의 유실물 선반에 얹혀져 먼지가 쌓여, 얇고 투명한 겹으로 갈라져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잃어버린다고 해서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 소중한 것들을 두고 완전히 다른 몸이 되어 세계에서 실종되거나 세계에 편입된다 하더라도

거기에 새로운 살을 입고 다시 걷기도 하고 (물론 발바닥과 땅이 맞닿는 촉감이 생경하지만)

드물게 되돌아오기도 한다. 스미레처럼.

하지만 그건 복원이 아니다. 그건 축원과도 같은 재탄생.

개의 목을 치고 새롭게 나아가는 용기다. 스미레가 뮤와 어떤 사랑을 나누고 돌아왔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어차피 스쳐지나가는 고철덩어리 속에서 잠시 눈빛을 얽는 사이.

단독자로 살고 만나고 사랑하고 잠시 얽히다가 다시 스쳐지나가 헤어지지만.

그 절대고독이 절대적으로 '고독'하지만은 않다고,

스미레는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조은 <또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