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우리 엄마는 개를 너무 사랑하셔서 평생을 개와 함께 하거나 개를 그리워하며 보냈다. 한 때 유기견 몇 마리를 보호하신 적이 있었다. 건강상태가 양호한 개들은 차례로 원하는 집에 입양을 보내고 남은 몇 마리는 이미 병이 깊어 몇 개월 남지 않았다. 남은 시간이라도 조금은 편하게 보내다 가라고 엄마는 개집을 지었다. 마침 봄이 오고 나무에 꽃이 피었다. 엄마는 꽃이 핀 가지 하나를 꺾어 개집 지붕에 놓아주며 말씀하셨다. 인간이든 너희든 사는건 꽃그늘 아래 잠깐 깃들다 가는 거란다. 혀를 길게 빼고 숨이 거친 개는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 - 그렇게 조금 더 살다가 어느 날 아침 자는 듯 죽었다.
엄마의 첫 강아지는 피스라는 흰색 스피츠였다. 중학생 무렵 외할아버지가 안고 오셨고 귀여운 모습에 한눈에 반해 몰래 방으로 안고 들어오다 들켜서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나기도 여러번이었다고. 피스는 영리해서 닭장의 닭들이 알을 낳으면 앞발로 문을 열고 들어가 대담하게 알을 훔쳐먹었다고 했다. 닭들이 난리를 치는 소리에 달려나가면 이미 주둥이가 노랗게 물이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웠다고. 피스는 개장수가 데려갔다. 참 희안하게도 맛있는 밥을 먹이겠다며 개밥의 간을 보던 외조부모는 사랑하던 개를 개장수에게 넘기는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왜일까? 조은 시인이 마루를 잃게 된 것과 비슷한 운명을 거쳤을 피스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한구석에 금이 가는 듯 아프다. 내가 키우던 개가 아님에도.
그럼에도 엄마는 계속 개를 원했다. 올곧게 자신만의 개를 원했다. 그렇게 중년이 되어서야 엄마는 개를 품을 수 있었다. 메롱이는 예민하고 좀 '사람'처럼 굴었다. 또또처럼 머리가 휘저어질만큼 트라우마를 갖진 않았지만 메롱이도 잡견이었고, 그래서 술에 취한 어떤 아저씨가 육개월 정도 밖에 안된 메롱이를 발톱이 뽑힐 때까지 발로 차고 벽에 던졌다. 메롱이도 평생 남자 어른을 무서워하며 살았고 소리에 민감했고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았고 오로지 엄마만을 사랑했다. 또또가 아픈 유년시절을 겪지만 않았더라도 굉장히 사교적이고 발랄한 '똥강아지'가 되었으리라 짐작되는 부분은 또또는 그렇게 자신을 학대했던 전주인이 무서워 벌벌 떨면서도 배를 깔고 기어가다시피 다가가 인사를 했다는 점이다. 메롱이는 엄마 외에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조금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지 않았다. 메롱이는 죽을 때까지 나를 물었다. 살점이 떨어져나갈 때까지 물고 늘어질 때도 있었다. 피가 철철 나니까 나도 울면서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메롱이를 사랑했다. 메롱이는 나를 감시했다. (하핫) 엄마가 주무시고 계시면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메롱이는 신경질을 부리며 이빨로 내 발등을 툭툭 건드렸다. 메롱이는 엄마만의 개였다. 죽을 때까지.
하지만 또또는 시인만의 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보호자라기 보다는 룸쉐어하는 친구로 인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 또또를 무작정 보살펴야 하는 연약한 생명으로만 보지 않아서였을까. 또또와 시인은 그냥 어떤 한 생명의 일생을 함께 곁에서 지내왔다는 느낌. 누가 누구를 살뜰히 보살폈다거나 누가 누구를 무작정 의지했다거나 하는 병든 사랑이 아니라, 그들의 산책처럼 나란히 걷거나 조금 뒤쳐져서 걷더라도 안기지 않고 자신의 발로 꿋꿋이 함께 가는 사랑. 또또는 지속되는 학대에 트라우마가 깊어져 병을 얻었다. 인간의 병도 그렇지만 개의 병도 좀처럼 낫지 않는다. 병은, 낫는 것이 아니라 다독이며 함께 사는 거라고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또또는 자신의 병을 다독이며 함께 외로웠다.
대부분의 반려견에 대한 글들은 개로 인해 내가 얼마나 많은 빛을 얻었는지 말하지만 시인의 글은 명도도 채도도 어둡고 문체는 다소 딱딱하고 심란했다. 또또가 시인과 함께여서 외롭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반대로 시인도 또또와 함께여서 마냥 행복했다고도 보이지 않았다. 살아간다는 것이 내 안의 외로움을 품고 조금은 어두운 그늘에 얼굴을 내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시인도 시인의 개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시인의 개가 아니다. 또또는 정말 독립적인 생명이었다. 그렇게 돌아보니 메롱이도, 별이도, 한울이도, 만복이도, 피스도 모두 독립적인 생명이었다. 엄마가 품었다가 잃거나 놓아준 그 모든 개들이 - .
인간이든 개든.
산다는 것은 꽃그늘 아래 잠깐 깃드는 일.
꽃은 한 철 피고.
우리의 삶도 그렇다.
인왕산 길모퉁이에 묻힌 또또의 유골이 삭아 흙이 되고 시인의 손가락을 아프게 툭, 입질하는 가시나무 순을 밀어올리는 양분이 되는 것처럼.
잘 살다 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