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길리언 플린 <나는 언제나 옳다>

by 별이언니

"추운 밤 따뜻한 차 한 잔을 들고 좋아하는 의자에 앉아, 창밖에서 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그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는 멋진 이야기를 접하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다" - 스티븐 킹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위 인용은 역자가 옮긴 이의 말을 닫으며 데려온 말이다. 길리언 플린의 이 단편소설을 읽는 일을 더없이 매력적인 지적활동이라고 자신있게 소개하면서.

내가 재인용한 이유도 역자와 같다. 이렇게 더운 날, 혹시 당신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괜찮은, 사적이고 고요한 공간에 있다면 얼음을 가득 넣은 커다란 유리잔에 진하게 우린 홍차를 부어라. 취향에 따라 벌꿀 한 두 스푼을 더해도 좋다. 1시간 정도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의자를 찾아내거나 혹은 벽에 등을 기대라. 여름이 시작되려는, 멀리 지평선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후가 지글거리며 몰려오는 이런 오후에 길리언 플린의 이 단편을 읽는 일은 더할나위 없는 즐거움일 테니까.

여기, 다 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불법 유사 성매매를 하면서 밥을 먹고 살지만 단골이 정기적으로 건네주는 책을 즐겁게 읽고 발랄하고 똑똑한 사기행위에 마음을 다하는 주인공이 있고, (그녀가 직업병으로 손목터널증후군을 앓게 된 이유는 실소가 터져나오지만 그건 그녀의 어투 탓이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세계는 반전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불온하기 짝이 없는 점쟁이를 만나러 온 우아하고 창백한 부자 여인이 있고, 오멘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온 것처럼 반항적이고 음울한 의붓아들과, 피와 저주로 금방이라도 땅으로 꺼질 것 같은 대저택, 가스레인지 위에는 물이 끓고, 마룻장 사이에는 면도날이 박혀 있고, 벽에는 핏자국, 언제나 출장중인 남편과 락밴드도 하지 않으면서 라임을 맞춰 싸아아아앙녀어어어언, 주우우욱여버리리리리일거야아아아아 - 하고 날뛰는 소시오패스 소년.

세계는 다시 빙글 - 반전하고,

사랑할 수 없는 의붓아들, 집에 들어오지 않고 전세계를 싸돌아다니는 남편, 그리고 우연히 찾아간 점쟁이 집에서 손목이 좋지 않은 여자가 바닥에 떨어뜨린 남편의 책 - 전과자에 유사 성매매 및 심리상담을 칭한 사기로 사람들 돈을 뜯는 여자가 내게 불운의 냄새가 난다고 지껄이는데, 저 여자가 방금 뒷방에서 내 남편과 무슨 짓을 한건지 돌아버릴 것 같은 심정으로 여자에게 청한다. 내 집으로 잠깐 와 주시겠어요- 내 집에 (아니 무엇에?) 정화가 필요해요.

혹은 빙글 - 이런 것일까.

블러드윌로우가 열린다. 1978년 이후 미국에선 처음으로 샤타누가에서 - .

무엇이 되었든 -

여기 , 다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의 요소가 모두. 그러니 느긋하게 첫 페이지를 펼쳐라.

참, 문은 잘 잠겼는지 확인하고 - . 문 앞에 끌어다놓은 옷장은 제법 무거워야 할텐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김대호 시집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