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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 시집 <페이크>

by 별이언니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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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숲을 지탱하는 것은 나무의 뿌리 사이를 흘러가는 물, 세균 덩어리의 썩은 물. 진득하고 악취가 풍기는 물은 온갖 벌레의 시체가 뒤엉켜 있고 나무는 그 물을 마시고 싱그러운 잎을 내민다. 부패한 물은 영양가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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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부서지는 잔볕을 바라보며 애써 눈을 돌린다. 물 아래 도사린 어둠을 들춰야 하나. 입술을 달싹이며 네가 뒤척일 때, 반듯한 이마에 엉긴 땀만 닦아주고 싶다. 너의 악몽을, 대낮부터 시작되는 너의 악몽을 아는 척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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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착각, 외면, 거짓말,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달콤한 것들. 그건 페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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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오기 위해 우리는 좁고 긴 어둠을 정수리로 들이박았다. 연한 뼈가 휘었다. 자궁을 찢고 뼈를 비틀고 살을 벌리며 더럽고 끈적한 물을 뒤집어쓰고 나와 울었다. 처음 숨을 쉬기 시작한 폐가 아파서 소리치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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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모두 어둠에서 왔다. 따뜻한 지옥에서 왔다. 사랑했겠지만 단순히 사랑한 것만은 아닌, 어느 사고, 어느 사건, 어느 사연, 어느 엇갈린 발걸음에서 왔다. 우리는 모두 사고처럼 잉태되어 사건으로 태어나 지루하게 손바닥을 뒤집는다. 흉처럼 몸에 새길 몇 가지 감정들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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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기어이 너를 굽어볼 밖에. 도리가 없다. 너의 아름다운 이마 아래 펼쳐지는 악몽이 사위를 어둡게 할지라도. 전전긍긍 애를 끓이며 함께 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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