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진 시집 <버스에 아는 사람이 탄 것 같다>

by 별이언니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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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가 있다. 내 앞에 있는 낯선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있지도 않는 기억을 더듬는 일. 전생의 기억이 뺨을 후려치는 것처럼 뜨거운 가을볕에 고즈넉히 담겨 있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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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감, 이라고 하나. 이 시집의 시들은 줄곧 알 듯 말 듯한 기억을 좇아간다. 사과가 떨어지거나 사과가 떨어지려고 하거나 사과가 떨어지지 않거나 한 모든 순간들이 겹쳐지는 순간에 멈춰 있는 시선이 있다. 고요히 응시하는 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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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어느 지점, 어느 균열을 바라보는 눈이 있다. 그 시선의 끝에 묶인 세계가 서서히 멈춘다. 멈춘 순간을 계속 바라보다보면 멈춘 세계 나름의 시간이 흐르고 풍경이 일그러진다. 시인은 그 일그러진 세계를 꼼꼼히 받아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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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쌓이기 전에 쓸어내는 것인지, 쌓아지 않을 만큼 내리는 눈을 기어이 쓸어내는 것인지, 모를 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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