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잠깐 설렜던 날들이 있었다.
우리 더 큰 집으로 이사가는 거야?
그 집 현관 쪽에 있던 방이 길어서 창문 앞에 우리 업무 공간도 만들 수 있겠더라!
아이가 자라며 책상을 없애고, 책장을 없애고, 우리 옷을 비우고 내어주었던 남편과 나의 공간이 안 그래도 내가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더 절실해진 시점이었다.
9년 전 3월 14일, 우리가 부부가 되던 그 해 우리 손에 쥐어진 돈은 단 3천만원이었다. 원룸 말고 방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을텐데, 그치? 우리의 작은 - 아니, 우리가 가진 돈에 비하면 컸을지도 모를 - 바람은 조금 외지긴 했어도 방이 두 개나 있는 신혼집으로 실현되었고, 그곳에서 개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와 복작거리며 살던 꽁냥꽁냥 시절도, 주변 환경을 고려해 선택한 두 번째 집도 - 지금의 집이다. - 이 집에서 태어나 어느덧 다섯 살이 된 아이와의 더없이 행복한 나날들도 돌이켜 보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낡은 아파트라 손 봐야할 곳은 좀 많겠지만, 아무렴 어때. 지금 집보다 훨씬 넓은 그 집에 잠깐 마음을 뺏기고 설레던 며칠이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이사를 포기했다. 여러 복잡한 상황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책임지고 있는 경제적인 부담감 때문이었다.
아쉽지 않아? 내가 신랑에게 물었고, 신랑은 나에게 물었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이 서로에게 준 답은, ’괜찮아‘였다.
고개를 들어 조금만 주변을 살피면 결코 괜찮지 않은 이유들이 넘치는,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우리에게 조금은 야박할 수도 있는 그런 세상에서 그러나 우리는 지난 9년 간 언제나 괜찮았고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결코 단숨에 대답할 수도 없고, 돈이 가장 중요한 건 아니야, 라는 모든 걸 초월한, 거창한 답을 내놓을 수도 없지맘 남편과 나는 늘
그랬던 것 같다. 서로가 있어서 괜찮았고, 서로가 괜찮아서 괜찮았다.
8번째 결혼기념일은 여느 해보다 조금 더 따스한 바람을 타고 찾아왔다. 남편은 내 몫과 아이 몫의 선물을 준비하느라 분주했고, 해질 무렵 우리 세 사람은 기분 좋게 마주앉았다.
연우 데려오길 잘 했다!
하마터면 우리의 8주년 결혼기념일 행사에서 - 다소 부적절한 매너로 로맨틱한 저녁을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혐의로 - 제외될 뻔 했던(?) 작은 아이는 아빠가 건넨 꽃 한송이를 받자마자 우와! 하며 킁킁, 향기를 맡는다.
우리 세 사람에게는 늘 그렇듯 괜찮고 여전히 행복한 하루.
아이가 잠시 짜증을 내도, 당신이 괜찮으면 나도 괜찮아, 서로의 몫을 나눠지는 하루하루.
언제나 근사하지는 않지만 꽤 괜찮은 우리 삶의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세 사람이 끝내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이유는 당신과 내가 함께이기에.
종일 분주했던 하루의 끝, 똑같은 파자마 세 벌을 손에 들고 온 당신이 있기에, 여전히 행복한 나날들.
우리의 여덟번째 결혼기념일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