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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모기 Jan 11. 2024

교사라는 이름 안에서 새롭게 사는 법

교사연구년 기록의 프롤로그


우리 학교의 왕언니 선생님이 지난해 정년퇴임을 하셨다. 사범대학 졸업하고 이십 대 중반에 교사가 되어 만 36년 동안 교사로 사셨다고 한다. 헉 만 36년이라니! 아득한 시간이다.

싱그럽고 발랄했을, 그분의 20대 신규교사의 옛 모습은 상상도 되지 않는다. 20대, 30대, 40대, 50대, 그리고 60대의 초입까지 그 숱한 날들을 학교에서 보내셨다는 것. 평교사의 삶으로.


그 까마득한 시간들을 생각하면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아련한  느낌이다. 한 번뿐인 인생에 딱 하나의 직업이라니.


가난한 대학생활을 했던 나는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입사했다. 얼른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7년을 회사원으로 파란만장하게 살다가 어느 봄날, 과감한 사표를 툭 던지고(주변의 무지막지한 반대를 무릅써야 했다), 산속에 파묻혀, 공부를 했고 교사가 되었다. 교사가 되어 참 좋았다.


퇴임하시는 선배교사 앞에서 교사가 나의 첫 직업이 아니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회사원으로 살았던 시간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갖가지 이야기의 배경이 되어주었다. 학생들과의 관계뿐 아니다. 직업으로서의 교사를 이해할 때도 비교대상이 되어주는 직장 경험은 가치 있었다.

내 첫 직장이 학교이고 끝직장도 학교라면 조금 억울했을 터이다. 그건 첫사랑과 결혼해 백 살까지 살아가는 노부부에게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이면의 지루함같은 것일 듯.


나는 다양한 삶이 좋다. 교직은 매년 만나는 아이들이 바뀌니 나름 버라이어티 하지만 모든 직장이 그러하듯 반복적인 속성이 있다.

이런 교사라는 직업 안에서도 다양한 경험들은 가능하다. 교사라는 영역 안에서 해볼 수 있는 많은 것을 해 보고 싶었다.


7년의 회사 출근 후 새 길을 찾았듯, 교직 7년 차 정도가 되니 뭐 새롭게 벌일 일 없을까 궁리를 하게 되었다. 그즈음 복수전공을 하여, 다른 과목의 교사 자격증을 땄다. 가르치는 과목이 바뀌니 새 직장처럼 학교가 신선해졌다. 수업이 더 재미났다. 좋았다.


또 몇 년이 지나고 다시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재외한국학교 근무라는 선택지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틈만 나면 저가항공 찾아내어 바다건너로 여행을 떠나던 내게 이건 어마어마한 매력 덩어리. 외국 살면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니! 몇 년 재수했고 성공했다. 교사로서의 해외경험은 재미났다.


또 몇 년이 지나 이번에 찾은 새로움은 교사연구년이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교직 경력이 15년쯤 된 교사들에게 6개월 혹은 1년간 학교를 떠나 자신이 계획한 연구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제도이다. 교직에 있는 동안 딱 한 번만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몇 번의 밤을 들여 정성을 쏟아부어 연구계획서를 만들어 보냈다. 됐다.


그렇게 2024년을 교사연구년으로 보내게 되었다.

2004년에 교사가 되었고 만 20년이 되는 해라서 이 행운이 조금 더 의미롭다. 학생으로 학교에 다닌 시간까지 더하면 36년을 학교에 다닌 것이니 잠시 쉬어갈 자격이 있지 않나.

매년 삼일절의 밤은 잠 못 이루는 밤이었는데, 처음으로 설레는 밤이 되는 것이다.


그 시간들을 기록하려 한다.

교사로서 갖는 조금 다른 모양의 이 역사의 한 조각이 아주 소중해서. 또, 연구년이 궁금한 수십만 교사들에게 작은 이야기라도 들려드리고 싶어서.


무엇보다 후배교사들에게 이런 말을 남기는 선배가 되고 싶어서.

“교사의 삶은 깁니다.

그러니 교사라는 이름 안에서

눈을 크게 뜨고

최대치의 새로운 삶을 찾아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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