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연구년 심층 면접 후기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잘 알면서도 잘하지 못한다면 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잘하지 못할 거면 알기 위해 그 많은 시간을 들여 굳이 책 읽고 공부할 필요가 있나. 잘하지도 못하면서 잘 안다고 떠벌리는 건 또 무언가. 결국 과시를 위한 지식일 뿐이지 않나. 앎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수많은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 면접을 마치고 집까지 오는 내내 부끄러웠다. 그동안 나는 학생들 앞에서 얼마나 잘난 척을 했단 말인가.
살아오면서 참 많은 면접을 봤다. 대학교 입학 때, 교사 임용 시험 때, 대학원 입학을 위해 여러 번, 취업을 위해 여러 번, 해외 근무를 위해 여러 번... 나를 잘 포장할 줄 알아서 실제의 나보다 더 나은 나를 면접위원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나는 면접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면접에서의 짜르르한 떨림과 긴장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면접은, 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포장기술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심층 면접 대상자 발표 공문을 받고 면접일까지는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몰라 시간을 대충 보냈다. 나의 연구 주제와 관련된 법령이나 논문, 교육 정책들을 설렁설렁 찾아 읽었다. 심혈을 기울여 알록달록 만들었던 연구계획서를 쭈욱 한 번 훑어보고 면접 장소를 향했다.
면접 보러 가는 제자들에게 늘 했던 말처럼, 밝은 표정으로, 목소리의 톤을 약간 높여서,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담긴 말투로, 자신감 넘치게 잘 대답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면접 장소는 집에서 멀었다. 나는 중등이어서 11시 30분까지 등록을 해야 했다. 토요일의 교통 정체가 예상되므로 아침 일찍부터 수선을 떨었다. 운전을 하면서 입으로는 계속 연구 주제와 관련된 생각들을 중얼댔다. 한 시간 이상 중얼거렸더니 입도 마르고 지쳐서 나중엔 멍해진 채로 운전만 했다.
너무 일찍 도착해 버렸다. 주차장은 오전 면접 중인 초등 선생님들의 차량으로 가득했다. 간신히 주차를 하고 차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등록 시간인 11시 10분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전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면접 장면을 하도 생각해서인지 약간 지쳐버렸다. 최종 선발 인원과 면접 대상자 인원의 숫자를 들여다본다. 내가 신청한 정책연구 분야는 뽑을 인원과 면접 인원이 거의 같다. 이건 면접에서 떨어질 확률이 극히 낮다는 의미 아닌가 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시간이 지나고 면접장 건물로의 입장이 허락됐다. 두어 발 들어가 등록과 동시에 휴대폰을 제출했다. 1층의 큰 강당에 중등 면접 대상자 모두가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 2층으로 줄 맞추어 올라간다. 다시 또 큰 강당이다. 모든 소지품을 넣어 가방을 한쪽으로 모아두란다. 학교에서 아이들 시험 볼 때랑 똑같은 풍경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다 큰 어른들에게 굳이 이렇게까지 싶은 마음도 조금 있었다. 면접에 대한 설명을 해 주신다. 설명이 끝나니 면접 안내문 종이까지 제출하게 했다. 이제 긴 기다림의 시간이다.
면접 시간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연구 분야별로 시간을 배정한 듯했다. 교육연구, 정책연구, 교육회복연구 순이 아닌가 싶었다. 나의 순서는 중후반이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와서 배가 고파온다. 면접 시간인 2시경까지 하릴없이 기다리기가 조금 힘이 들었다. 빈 책상을 앞에 두고 모르는 이로 가득 찬 군중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면접 내용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하기도 완전히 지쳐 머릿속은 무념무상이었다.
나의 순서가 되었다. 안내하시는 분을 따라 10여 명이 면접실을 향해 줄 맞춰 이동했다. 각자의 면접실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면접실 안에서는 먼저 면접 보시는 분의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잠들어 있던 긴장감이 몸 안에서 퍼지는 것이 느껴진다.
면접장 안에 들어서니 면접관 세 분이 나란히 앉아계시고 진행하시는 한 분이 계시다. 진행하시는 분이 파일 하나를 내가 앉은 책상 위에 살포시 놓아주셨다. 나는 파일을 펼쳐본다. 세 개의 긴 문장이 적혀있다. 면접 질문이다. 앗 이런! 긴장 때문인지 독해가 잘 안 된다. 천천히 읽어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고 답변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 대충 읽고 얼른 답변을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 머릿속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제한 시간이 12분이었으므로 얼른 말을 시작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 답변하겠습니다.' 하며 고개 들어 앞에 계신 면접관의 얼굴을 본다. 세 분의 굳은 표정에 말이 꼬이기 시작했다. 12분 안에 세 문항에 대해 답변을 해야 하는데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 안 된다. 어딘가에 타이머가 있다고 했는데 눈이 나쁜 나에게 숫자는 보이지 않았다.
면접관들은 아무런 질문이 없으시다. 무표정하게 혹은 무서운 표정으로 혹은 약간 쓴 미소를 보이며 듣기만 하신다. 바위 같은 표정의 처음 보는 이들을 향해 혼자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처음 알았다. 내 말이 다 끝났지만 시간이 되기 전에는 나갈 수 없다. 정적과 고요가 한없이 어색하다. 면접관분들은 여전히 딱딱한 표정 그대로이시다. 시간이 되었느니 퇴장하라는 안내를 받고, 그렇게 방을 나왔다.
이불킥. 이불+킥(Kick)의 합성어. 이불속에서 발길질을 하는 행위를 말하며, 2013년 경 웹상에서 퍼지기 시작한 신조어. 잠을 자기 전에 영 좋지 않은 기억이라든가 자신의 흑역사가 떠올라서 창피한 나머지 몸부림을 치는 와중에 덮고 있는 이불을 발로 차는 행위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사며 크게 유행하였다. (출처:나무위키)
그걸 처음 해봤다, 이불킥. 할 수 있는 말이 많았는데 그 말들 다 놔두고 나는 무슨 말을 했던가. 수많은 면접 경험 중에서 이런 불만족은 처음이었다. 면접장에서의 내 한 마디 한 마디가 후회스러웠다. 이건 면접에서 붙고 떨어지고의 문제와는 별개이다. 연구년에서 탈락해도 상관없지만, 너무 중요한 질문에 대해 평소의 내 생각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슬펐다.
면접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야 교사연구년 안내 공문에 이런 내용이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심층 면접의 심사내용 1번, 교사 소명의식 및 교육철학, 교육경험. 그것이 내게 주어진 세 개의 면접 질문 중 두 개였다. 그리고 나머지 면접 질문이 연구계획 관련이었다. 교육철학에 대해 조금 더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한 것이 그렇게 아쉬웠다. 교사로서 가장 중요한 질문인데, 갑자기 질문받았다는 이유로 중언부언한 것이 부끄러웠다. 나는 훨씬 더 멋진 생각을 지닌 교사임을 어필하지 못했다. 면접까지의 시간 동안 연구계획서 관련 내용만 입이 아프도록 중얼중얼했던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나의 면접은 끝났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아주 무거운 기분을 이고 지고 지냈다.
잘 알고 있지만 잘하지는 못하는 일이 세상에는 많다. 잘 알고 있으면서 실수하는 경우도 많다. 면접의 이론을 잘 알고 있지만 나는 잘하지 못했다.
아이들 앞에서 더욱 겸손한 말투의 교사가 되어야겠다. 잘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선생님도 실제로는 면접을 망쳤다는 솔직한 고백도 덧붙여야지. 실수했고 잘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기회가 또 있을 터이니, '알고 있음' 자체는 소중하단 말도 강조할 거다.
그러니 나도 이번에는 면접의 문을 넘어서지 못하더라도 내년에 다시 도전하면 되는 것이다. 아, 그렇게 스스로를 토닥이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아쉬움은 산더미로 쌓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