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모기 Mar 03. 2024

모든 합격은 찬란하지.

교사연구년 최종 결과 발표

면접 후유증이 며칠을 갔다. 과거의 내 모습이 현재의 나를 괴롭혔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머릿속에서 면접 모범 답안이 줄줄줄 문장으로 떠다닌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생각에 좀 힘이 들었다. 지나간 일에 마음을 두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해 왔는데, 지난 시간에 과하게 머물러 있는 나 자신이 낯설었다. 인생에서 크게 중요한 면접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러는지 그때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속상함의 이유를 알 것 같다. 면접 질문 중 하나 때문이다. 교사로서 가진 교육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할 내용이 태산처럼 많았는데, 핵심이 빠지고 변죽만 울리는 말들을 중언부언했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터이지만 나만 알고 있는 속상함이 있었다. 면접에서의 당락과 무관하게 교사로서의 자존감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던 거다.  


다행히 인생의 모든 감정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녹아내리는 법이라서 일주일쯤 지나니 머릿속의 문장들이 사라졌다. 11월 11일에 면접을 보고 발표까지 2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하루하루를 보내며 좋은 소식에 대한 기대감은 가뿐히 내려놓았다. 그래도 결과가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쉬움 가득의 면접 시간을 보내고 온 사람이지만, ‘그래도 혹시나..’하는 마음이 잔잔히 깔려 있었다.


그런 미련의 감정이 생길 만한 이유가 있다. 분야별로 면접 인원을 분석해 볼 때, 교육연구와 교육회복연구 분야는 선발 인원에 비해 면접 인원이 많았지만 내가 지원한 정책연구 분야는 선발인원과 면접인원이 거의 동일했다. 1차 서류 점수도 높지 않고 2차 면접도 부족했지만, '혹시나..'의 지푸라기를 버리지 못하고 잡고 있었던 이유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이 며칠인가를 제일 먼저 생각했고, 그런 아침들이 오고 가는 동안 11월 23일 금요일은 왔다. 1차 결과 발표 공문이 5시 다 되어 왔던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아침부터 기다림의 마음을 품지 않았다. 차분하게 퇴근시간이 오길 기다렸다. 4시 30분이 넘어가고 공문 담당 실무사님이 퇴근준비를 하시는 소리가 들린다. 살그머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귓속말로 작게 말한다. "공문함 한 번만 봐주실래요, 오늘 올 공문이 있는데..."


나는 자박자박 내 자리로 돌아왔다. 실무사님이 "어!" 하신다. 내가 뒤돌아 본다. 그녀가 웃는다. 눈을 찡끗하며 소리 없는 물개 박수를 보내 주신다. 나는 눈이 똥그래진다. 얼른 고개를 돌려 내 공문함에 들어와 있는 공문을 급히 열어본다. 앗, 이런! 명단에 내 이름이 보인다. 이럴 수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수십 년 간 삼일절 다음날은 새 학년 시작이었다. 그래서 삼일절 밤은 보통 잠을 설친다. 교사가 된 이후로는 더 그렇다. 그런데, 내게 특별한 3월이 펼쳐지게 됐다. 나는 내년 개학일인 3월 4일에 학교로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일이 내 인생에 생기다니! 합격에 대한 기대치가 극소량이었기에 마음속엔 기쁨이 더 크게 넘쳐흘렀다. 부족함 투성이의 내 이름을 명단에 올려주신 여러분들이 고맙다. 다른 이에게 가야 했을 행운이 나한테 많이 배분되었나 보다. 그만큼 더 열심히 멋진 연구를 해야겠지!


교사생활 20년에 잠시 쉼표를 찍게 된 2024년. 너무 소중하다. 어릴 때 남몰래 숨겨놓고 하나씩 꺼내먹던 달큰한 사탕처럼, 아주 천천히, 아주 아끼며, 하루와 하루를 음미하며 살아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면접을 가르치는 내가 면접을 망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