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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모기 May 25. 2024

담담하다. 애써 감정을 누르는 마음

훈련병이 되어 떠난 아들

아들이 군대 갔다. 20년을 '애구,, 울 애기'라고 불러온 나의 막내가 어른이 되어 머리를 빡빡 밀고 떠났다.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 떠나는 아이의 등에 대고 슬픔이나 눈물 따위 꺼내지 말아야지 하고. 덕분에 큰 눈물 없이 아이를 보냈다. 아들이 없는 집에 돌아온 후에도 나는 울지 않았다. 담담한 마음으로 긴 시간을 보낼 참이다.


어쩌면 세상에 오지 않을 뻔한 아이였다. 나는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참이었고 한 방에 임용시험에 붙어야 하는 간절함이 있었다. 얄팍한 남편의 수입만으로 네 식구가 견딜 수 있는 시간은 일 년이 시한부였다. 딱 일 년 준비로 합격하고 말겠다며 모든 힘을 모아 공부하던 그 참에 임신임을 알았다. 초여름의 어느 날 나는 뱃속의 생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심한 입덧이 올 듯한 기미가 느껴질 때 나는 공부냐 아이냐 중에 한 개의 답지를 골라야 한다는 절박함에 놓였다. 하지만, 나와 남편은 복수정답 처리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임신한 채로 하루에 8시간을 꼬박 도서관에서 보냈다. 위의 두 아이를 재운 후 깊은 밤이면 서재에 들어앉아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그렇게 임신한 몸으로 임용시험 1차, 만삭의 몸으로 임용시험 2차를, 무사히 건너왔다. 나는 교사가 되었고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20년 동안 아들을 바라보며 그때 무서운 결정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나를 끝없이 칭찬했다. 이 아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아들에게 미안한 것이 많다. 가장 큰 것이 고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내 욕심 채우러 갔던 일본에서의 시간들. 나는 일본에서 일해보고 싶었고 아들은 엄마의 꿈을 위해 마음에 없는 일본에 따라왔다. 내 버킷리스트를 이룬 2년간 아들은 고등학생으로서의 2년을 뭉텅 날렸다. 일본의 학교에서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한 채 고2와 고3을 마치고 돌아왔다.(이 슬픈 이야기는 나의 첫 브런치북 '도쿄취업 2년 하필이면 코로나'에 가득) 하지만 한 번도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다. 20년 내내 순하게 자라, 부모의 마음에 아주 작은 생채기 한 조각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나 엄마를 위로해 주는 역할을 맡았다.


그랬던 아들이 입대를 했다. 입대 전날 머리를 자르러 가는 길에 동행했다. 까까머리가 되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데 자연스레 아들의 어릴 때 모습이 떠올랐다. 서 너 살의 아들은 미용실에서 머리 자를 때마다 눈을 힘주어 감았다. 울지 않는다고 미용실 사장님은 칭찬해 주셨다. 사각사각 가위 소리가 무섭고 깎인 머리카락이 얼굴을 따끔따끔 찔러 아프면서도 꾹 참느라 미간을 잔뜩 찡그린 아가가 한없이 사랑스러웠던 때. 뭉클함이 올라와서 얼른 추억에 잠기기를 끊어냈다. 난 울지 않아야 하니까. 웃으면서 씩씩하게 아들을 보낼 거니까. 떠나는 아들 마음이 얼마나 무거울지 가늠해 보며, 나는 아들의 무거움에 내 슬픔을 얹어주고 싶지 않았다.


철원이라는 낯선 동네에 아들을 혼자 두고 왔다. 5월의 햇살이 찌르듯 따가운 날이었다. 손을 흔들며 수 많은 까까머리 청년들 속으로 사라지던 아들의 모습이 선하다. 집에 돌아오니 집안 곳곳에 아들 흔적이 가득하다. 아침에 급하게 출발하느라 아무렇게나 벗어던져진 잠옷 바지를 개면서, 정신없이 지저분한 책상 위의 쓰레기와 먼지 속에서 아들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집어내면서 먹먹함이 밀려온다. 입대 전 떠났던 여행에서 돌아와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떠난 아들의 캐리어를 정리하는데 가방에 아들 냄새가 가득하다. 벗어놓은 양말마저 슬프다. 낯선 공간의 낯선 이들 사이에서 뒤척이며 잠 못 들고 있을 아들 생각에 마음이 아득해진다.


하지만 나는 담담하고 싶다. 담담하게 엄마의 자리를 지키며 쑥쑥 자랄 아들을 기다리고 있을 테다. 지난 날들 생각하기 금지, 추억에 잠기기 금지를 중얼대며 아들 방 정리를 끝냈다. 아들이 쓰던 책상을 깨끗이 치우고 아들이 앉던 의자에 앉아 나는 지금 글을 쓴다. 1년 6개월의 시간 동안 아들은 더 건장하고 깊어질 테이고, 엄마는 더 아름답고 지혜로워질 것이다. 순간순간을 가득 채워 넘실넘실 살다 보면 늘 그러하듯 시간은 또 순식간에 흐를 것이다. 서로의 삶을 단단하게 응원하는 엄마와 아들이 되어 보자.

주말에 온다는 아들의 첫 전화를 기다린다. 담담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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