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아들들을 생각하며
아이 셋이 성인이 되었으니 부모됨의 희로애락은 다 경험했다고 생각했다. 누구 앞에서든 육아 쫌 해 본 어른여자로서의 조언을 술술 풀어냈다. 겪을 건 다 겪은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주 새롭고 진하고 아픈 체험이 또 있었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계. 군대 간 아들의 엄마가 되는 일, 이것은 여태 알지 못했던 세상이다. 또 하나의 엄마의 시간이 열렸다.
아들이 5주간의 신병훈련을 마쳤다, 무.사.히. '무사하다'라는 단어의 소중함을 절절히 느꼈다. 훈련소에 까까머리 아들을 들여보내던 날, 남편과 나와 아들의 여자 친구는 입소 시간을 기다리며 신병훈련소 근처 카페에 앉아있었다. 무심히 열어본 휴대폰 뉴스에서 나는, 한 훈련병이 수류탄 훈련 중 사로로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놀랐고 슬펐고 걱정되었다. 불과 몇 주 먼저 훈련병이 된 아들 같은 아이의 죽음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아들을 들여보냈다. 아들도 우리도 애써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자신의 슬픈 표정이 마주 선 상대방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할까 싶어 우리 모두는 최선을 다해 슬픔을 삼켰다.
북한과 훨씬 가까운 낯선 땅에 아들을 두고 와 밤에 잠은 어디서 어떻게 자는지 밥은 어찌 먹고 있는지 모든 것이 궁금하고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며칠 후에 또 어이없는 소식이 전해졌다. 뙤약볕에서 군기훈련을 받던 훈련병이 사망했다는 뉴스였다. 믿을 수 없었다. 훈련소에 들어간 지 열흘도 되지 않는 아들들이 무거운 군장을 메고 얼차려훈련을 받다가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5월 말의 햇살이 그 어느 해보다 유독 뜨거웠다. 고통 속에 죽어간 아들이 내 아들 같아 말로 다할 수 없는 아픔이 가슴을 후벼댔다. 연이은 믿을 수 없는 사건 사고에 괴로웠다.
아들과는 주말에나 통화가 가능했다. 휴대폰을 식탁에 올려두고 시선을 휴대폰에 고정한 채 토요일 10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자칫 전화를 놓칠까 싶어 한 순간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첫 통화를 하며 나는 아들의 무사함을 확인했다. 아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생활관에서 18명의 훈련병이 함께 잠을 잔다고, 차렷 자세로 반듯하게 누울 만한 넓이의 매트 위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수 십 명이 한꺼번에 씻으러 들어가 10분 안에 샤워와 빨래까지 마쳐야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자신의 넓은 침대에서 이리저리 뒹굴며 자던 아이들에게 얼마나 낯선 생활일지 생각하니 애잔함이 밀려왔다.
18명의 생활관 동기들이 대부분 감기에 걸렸다며 통화 내내 주변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들도 중간중간 쿨럭댄다. 앞으로 해야 할 어려운 훈련들을 응원하며 전화를 끊었다. 고등학교 때 코로나를 겪으며 2년간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한 채 고립된 생활을 하다가 성인이 된 아이들이다. 단체 생활과 인간관계가 몹시 버거울 세대이다. 가만히 생각하니 왜 이 많은 아이들이, 한참 꿈 많고 할 일 많은 때에 저렇게 단체로 담장 안에 갇혀 지내야 하나 억울함과 속상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걱정 속에 아들의 훈련 종료일만 기다리고 있었다. 화생방이나 각개전투나 20킬로 행군을 걱정하면서. 그런데 또 가슴 내려앉는 소식이다. 자대 배치 받은 지 한 달 된 군인이 새벽에 보초를 서다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했다. 이 소식은 더 남일 같지 않았다. 왜냐하면 군인 부모님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그 군인의 어머니가 아들이 군대 갔다, 첫 통화를 했다, 자대 배치를 받았다 등등 글을 올리시던 분이기 때문이다. 내겐 너무 큰 충격이었다. 왜 이런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고 화가 났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다는 것은 아들의 생사를 걱정해야 하는 일이었다. 인터넷 카페에서 많은 엄마들은 말했다. 당장 아들을 데려오고 싶다고. 들어갔던 모습 그대로 무사하게만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좋겠다고. 나의 마음도 그것뿐이다. 아직 500일 이상 남은 아들의 군 생활이 무탈하기만을 무사하기만을 바라고 바란다. 내 아들뿐 아니라 다른 집 아이들도 그 소중한 아이들이 입대할 때의 건강한 모습 그대로 무사히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더 이상의 슬픈 뉴스가 전해지지 않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
엊그제 장마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7월 19일은 채해병의 사고 1주기가 되는 날이다. 며칠 전 청문회가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뉴스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사고 역시 어처구니없고 화가 나는 일이었다. 그 엄마와 가족들의 찢어지는 아픔과 고통과 억울함을 어찌해야 하는 건지. 단 하나뿐인 아들이라고 소리쳐 울던 채상병 엄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누군가의 따뜻한 사과와 책임지는 태도가 간절한다. 정말,, 간절하다.
군대는 많이 바뀌어야 한다. 아이들은 과거의 아이들이 아니다. 전근대적인 군대문화와 지금의 젊은이들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도 크다. 바뀌지 않으면 억울한 사연들은 쌓이고 쌓일 것이다. 아들들의 희생이 아프다. 아파 죽을 것만 같다. 대한민국의 곳곳에서 자신의 귀한 젊음을 보내는 이 시대의 군인들이 무사하기를,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내 아들이 훈련을 받는 그 5주 동안, 내 아들은 다행히 무사했으나, 무사하지 못하여 하늘의 슬픈 별이 된 세 청춘에게 눈물을 담은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너무 아픈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