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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Mar 22. 2024

(퇴직일기) 금요일인데 왜 이리 우울할까?

오늘 가장 잘한 일 - 딸기 산 것

[퇴사 아니고 퇴직입니다] 금요일인에 왜 이리 우울할까?


2024년 3월22일 (금)



퇴직하고나서 실감나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날짜가 지나가는 것이다. 요일이 흘러가는 것이다. 이것이 뭔고 하니, 직장인 때에는 얼른 일주일이 가서 소위 불금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월요병이 생기고 수요일 정도 되면 이틀만 보내면 된다는 희망을 가진다. 그리고 금요일이 오면, 이틀을 쉴 수 있는 연휴의 하루 전날. 직장인들은 불사조가 된다. 마음도 너그러워지고 웬만한 업무 스트레스도 참고 이겨낸다. 조금만 있으면 불금이니까.



사실 불금이라고 해서 딱히 다른 프로그램을 가지진 않았지만 금요일이라는 그 상징성이 컸다.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힘들어하고 해방되고 싶어하는 심리적 치유가 바로 금요일이라는 요일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오늘이 금요일이면 웬만한 역경은 이겨낼 수 있다. 시간이 멈추지 않는 이상, 금요일 퇴근 시간은 결국 현실로 다가오고 말기 때문이다.



그런데, 퇴직해서 출근 개념이 없어지고, 날마다 집에 있다보니 아내가 그토록 신나하는 금요일 퇴근 시간, 인턴이 되어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막둥이가 그렇게 기다리는 금요일 퇴근 시간이 내게는 그저 무덤덤한 시간, 무덤덤한 요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어떨 때는 오늘은 무슨 요일인지조차 까먹을 때가 있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정신 차리자.)



어제 오늘 기분이 계속 우울했다. 다시 가슴이 답답해지고 조여왔다. 어제는 비상약까지 먹었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수요일 저녁 아내가 내게 던진 한 마디 말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물론 그 생각이 정확하진 않다. 내 짐작에 그것 말고는 내 가슴이 이렇게 다시 철판이 나를 누르는 것처럼 답답해지는 원인 또는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퇴직 이후 전업작가와 글쓰기 강사의 삶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4월달 개강을 목표로 성인반 글쓰기 수업자를 모집하고 있다. 최소 인원 2명만 되면 무조건 수업을 시작한다고 했는데, 어제 그 두 명이 채워졌다. 이제 시작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수업료가 문제다. 수강생 입장에서보면 결코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4월에서 6월까지 3개월간 50만원의 수업료를 받기로 했는데(이 수업료는 첫 수강생이 된 사람과 협의하여 결정한 것이다.) 일시불로 현금을 마련하는 게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수업료 할부에 대한 문의 문자도 왔다. 나는 수업료는 상관 없다고 답변을 보냈다. 2개월 분납이든 3개월 분납이든 상관이 없다고 했다. 문제는 성인 2명의 수업만으로는 내 생활비가 만들어지지 않는 데 있다. 3개월에 100만원을 버는 수입으로는 생활할 수가 없다. 물론 추가 수강생이 더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내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초등생 독서논술을 하면 매달 계속해서 수입이 들어올 텐데, 어린아이들 수업은 싫다 하고 어른만 받겠다고 하니 어른이 글쓰겠다고 누가 돈을 내겠냐는 것이다. 나는 부모님 때문에 강제로 와서 수업하는 그런 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을 다그치고 이끌어가는 데는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될 뿐 아니라 효과도 별로 없다. 아이들이 한다면 정말 책읽기를 좋아하고, 독서를 통해 자신의 상상력을 넓히려는 능동적인 아이들 아니면 받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니 수업하는 반이 쉽게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내의 입이 툭 튀어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냥 그 정도의 얘기만 하고 끝낸 이야기인데, 초등생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아내의 말은 내게 계속해서 하나의 가시처럼 목에 걸려 있었다. 내가 가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여겨졌다. 아직은 외주를 한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지만 이번 달에 세운 현금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여 결국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말았다.



오늘 아침 아내가 출근하고 나서 나는 내내 우울했다. 이제 나는 한 달이 빨리 지나가기를 꿈꾼다. 그래서 돈 쓸 일이 빨리 없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한주 한주 KTX 열차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게 한편으로는 좋다. 얼른 3월이 지나가야 한다. 이렇게 계속 마이너스로 살 순 없으니까.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빨리 한 주가, 한 달이 지나가버리는 것이 너무 서럽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고 깃발은 올렸지만 깃발이 펄럭이지 않는다. 그저 세월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가까운 도서관 사서와 통화를 했다. 작가이고 퇴직하여 (시간이 남아) 아동이나 성인의 글쓰기 수업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방법이 있느냐고 물으니 메일 주소를 알려주면서 이력과 함께 생각하는 수업 개요를 보내주면 하반기 프로그램 때 참고해보겠다고 한다. 그래서 이력을 보내고 성인 동화창작반, 시니어 자서전 쓰기, 초중고 독서논술반 등을 제안했다. 도서관에서 하는 수업은 재능기부이자 자원봉사 개념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활동을 통해서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크다. 문화센터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에 강사로 활동해도 거의 차비 수준의 강사료가 나온다고 들었다. 그래도 한 군데 문화센터에 강사 구직신청을 했다. 어떻게든 뭐라도 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4월에 시작하는 수업준비를 해야 한다. 단 두 명의 수강생이라도 자신의 인생이 바뀌를 간절히 바라는 분들이기에 소홀히 할 수 없다. 내 수업을 통해 나도 진정 수강생들의 인생이 바뀌길 바란다. 자신들의 숨어있는 재능을 발견하고 새로운 인생을 도전하는 것을 응원한다.



그러기 위해선 나 먼저 도전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우울감에 빠져 이렇게 나약한 모습으로 앉아 있지 말자.

오늘 읽은 성경에서도 기드온은 작은 자에서 큰 자가 되었다.



아, 퇴직학교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냉큼 출연하겠다고 답변을 했다.

내성적이라 그런 거 잘 못하지만, 이젠 뭐라도 뛰어가고 달려가서 도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우울아, 물러가라.

오늘은 상추를 사러 갔다가 갑자기 확 내린 딸기값에 놀라 얼른 두 팩을 담았다.

오늘 가장 잘한 일은 바로 딸기를 산 일이다.


우리 가족들이 아주 좋아하겠다.




두 팩에 9,900원으로 샀다니까, 가짜 딸기 아니냐고 믿질 못한다.

그러게. 한 팩에 2만원씩 하던 딸기가 왜 갑자기 싸졌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늘 저녁에는 시원한 딸기를 먹을 수 있겠다.


그 동안 가족에게 딸기를 사주지 못해 많이 미안했다.

오늘은 딸기 파티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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