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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봄날 시편

(시를 쓰다) 종지나물

양키제비

by 봄부신 날

[종지나물]



하루가 천 년 같던 억압의 35년이 끝나고

찬란한 빛이 어둠 헤치고 쏟아져 들어올 때

그래서 자유마저 혼란스러워 할 때

초록옷을 입은 미군은

조선에는 마치 풀꽃 하나 없다는 듯

자기네 제비꽃 선물처럼 가져왔고

반도 곳곳에 뿌리내린 양키제비꽃은

조선 땅에서 종지나물로 75년을 살아왔다


이제 봄이면

제 나라인 양 주인집 제비꽃 자리를 넘보니

덩치 작은 조선 제비꽃은 자꾸 구석으로 밀려난다


이제 곧 이 땅은 종지나물로 뒤덮일 것이지만

우리 제비꽃은 구석에서라도 꿋꿋이 꽃잎 내민다

시든 것처럼 보여도

말라버린 것처럼 보여도

살아, 온 힘 다해 살아내는 것이니


아서라

종지나물아

나물은 무쳐 먹는 풀이고

꽃은 가슴으로 먹는 풀이 아니더냐


그저, 햇빛만으로 감사하게

그렇게 너도

봄을 누리거라

봄은 우리 모두의 것이니


너도 아름다운, 봄꽃이다.



(후조, 요나단 이태훈)



2024-04-18 종지나물.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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