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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Sep 02. 2016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그의 책은 역설적이다. 그의 예감은 틀렸다. 그리고 나의 예감도 틀렸다


기억이란 얼마나 불충분한 정보인가 하는 문제는 사실, 인지학 또는 뇌과학에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제는 많은 분들이 알고 있어서 예전만큼 충격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십여년 전에 미술치료 공부하면서 하버드 대학교의 농구공 실험 동영상을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https://youtu.be/vJG698U2Mvo)

기억하기 위한 인지 첫 단계에서 눈의 부정확성 때문에 우리는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맨 처음 정보를 받아들이는 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정확하지 않습니다.

가령, 자녀들이 군에 입대하게 되면 그때부터 길거리에 군인들이 엄청 많이 보인다거나, 이 차를 사고 싶다, 생각하면 그때부터 그 자동차가 계속 눈에 띄는 것처럼, 우리 눈과 뇌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군인이 거리에 많았다 라고 기억하거나, 유난히 노란 택시가 많았어, 라는 정보와 기억들은 사실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책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 앞부분이 조금 지루했습니다. 작가의 의도적인 배치이기도 하지만, 회사 동료가 1부를 넘기지 못하고 제게 먼저 읽으라고 빌려준 까닭이 있었습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_표지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주인공의 학창시절과 역사 이론 따위를 들먹이는 지리멸렬한 수업시간, 그리고 이성친구와 줄다리기를 하는 감정싸움의 느리고 희부연 1부 능선을 넘어서면, 돌연 어른이 되어버린 2부가 나타납니다.

그 사이 여자친구는 학창시절 모든 친구들보다 지성적으로, 이성적으로 우수했던, 너무 뛰어나 열등감조차도 느끼지 못했던 친구에게 빼앗기고, 그런데 그 남자친구가 갑자기 자살하고, 주인공은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혼자가 되어 살아갑니다.

이야기는, 이전 여자친구의 엄마가 죽으면서 돌연 주인공에게 약간의 돈과 자살한 남자친구의 일기장을 유산으로 남겨주면서 빨갛게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이전의 여친 베로니카와 사귀어도 되겠냐며 공손히 편지로 물어왔을 때, 나름 공손하게 대답했다고 기억하고 있는 그 편지 한 통이 판도라의 상자가 되죠.

이 책은 맨부커 상을 받은 작품인데, 책이 얇다는 심사위원들의 지적에, 책을 다 덮으면 즉시 맨 앞으로 돌려 다시 읽을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300쪽에 달한다고 작가는 재치있게 대답합니다.

맞습니다. 결말이 지나치게 충격적이어서(반전이 심하죠.) 저는 처음에 감을 잡지 못했고, 처음부터 다시 읽기 힘들었던 저는 인터넷으로 결말에 대한 정보를 찾아들고서야 이해를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1부에서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독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숨겨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말이죠. 기억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기억’이라는 장치를 표현하기 위해서 조금은 흐린 정보들을 심어 놓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비슷한 다른 책들이 생각나는 이야기였습니다만, 기억의 왜곡에 대하여 조금 더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기억의 왜곡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를 통해 조금 더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요즘은 네이버 지식인이나 구글이라는 어마어마한 정보의 그릇 때문에, 내가 맞네, 네가 맞네, 싸울 일이 별로 없지만, 어쨌든 자신의 기억을 믿고, 자기 이야기가 맞다고 목소리 키우고 우기지 맙시다. 자신의 기억만큼, 자기가 눈으로 보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정확하지 않은 것도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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