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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Sep 09. 2016

<채링크로스 84번지>

무명작가가 20년간 나눈 서점지기와의 편지

읽는 내내 간지러웠습나다. 이런 책을 읽고 즐거워 어쩔 줄 몰라하며 재미있어하는 걸 보면, 내 독서 취향이 좀 독특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뭐라고 할까요. 읽는 내내 입에 묘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책입니다. 그들의 편지를 훔쳐보며(사실 훔쳐보는 건 아니죠) 그저 부러움에 어쩔 줄 몰라했죠,

얇기도 얇았지만 퇴근길 이틀 만에 후딱 읽어버렸습니다.(그만큼 재미있었다는 뜻)
이 책은 가난한 미국의 방송작가 <헬렌 한프>와 영국의 헌책방 <마크스> 직원들이 20년간 주고받은 헌책 주문서와 발송서를 모은 것입니다. 다만 그 도구가 편지였다는 것이 좀 특이하죠.



그녀는 희곡 작가, 방송 작가, 잡지 프리랜서, 백과사전 집필자, 어린이 역사책 등 살기 위해 무슨 글이든 썼지만, 정작 자신의 희곡은 단 한 편도 무대에 올리지 못한 실패한 작가입니다.(물론 이 책 ‘채링크로스 84번지’ 책을 내고 나서 단번에 유명 작가로 올라서지만요.)



20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책을 공급받던 그녀는 마크스 헌책방으로부터 프랭크가 사망했다는 편지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로부터 남편이 헬렌의 편지를 너무 기다리고 너무 행복해하는 바람에 사실은 헬렌을 조금 질투했다는 뒤늦은 고백 편지도 받죠.


헬렌은 마크스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계란 등 식료품과 성탄절, 부활절 선물들을 소포로 보냅니다. (책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책을 사기보다 물품을 보내는 사랑을 보니 역시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당시 영국은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뒤라 배급제를 실시하고 있었는데 헬렌의 소포들은 마크스 직원들을 영원한 헬렌 팬으로 만들었죠.

우리나라에는 2004년에 번역되어 나왔는데 최근까지 12쇄를 넘겨 나름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책이 나온 뒤 큰 인기를 끌어 앤서니 홉킨스가 나오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원작보다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하네요. 1987년 작품인데 영화도 꼭 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는 “84번가의 연인”이라는 제목으로 DVD로 나왔답니다. 처음 영화는 “84번가의 극비문서”였다는데, 둘 다 제대로 책을 안 읽어 본 분이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만약 책방을 운영한다면, 저도 손편지로 책을 주문받으면 참 좋겠다 생각해봅니다. 20년 동안 책 이야기를 하며 우정을 나눌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도 같네요.

마크스 책방의 프랭크는 헬렌 한프에게 답장을 하면서 헬렌 부인으로 시작해서, 헬렌 양 그리고 친애하는 헬렌으로, 이름을 부르게 되는 책 우정.

헬렌 한프 역시 여러분께, 친애하는 프랭크, 친애하는 초고속 씨, 친애하는 나무늘보 씨, 이봐요 프랭크!!처럼 온갖 이름으로 부르지요.

헬렌 한프는 끝내 영국을 방문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아름답고 소중한 편지는 전 세계로 퍼져갑니다. 아, 마크스 서점에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이젠 ‘채링크로스 84번지’ 책도 놓여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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