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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Jul 23. 2024

(책꼬리 단상) 섬김의 마음

할아버지의 기도

[섬김의 마음]


어느 날 아침이었다. 물을 주려고 하다가 컵 속의 흙에서 움튼 자그마한 연두색 싹을 보게 되었다. 바로 어젯밤 잠이 들기 직전까지만 해도 컵 속에는 흙만 가득 있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맛보았다.


두 개의 싹은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나는 이 사실을 빨리 외할아버지께 알려드리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외할아버지도 필경 나처럼 깜짝 놀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조금도 놀라지 않으셨다.


"네쉬메레야. 생명은 이 세상 어느 곳에나 존재한단다.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도 생명은 숨어 있는 법이란다."


외할아버지는 무릎에 나를 앉혀놓고 차분한 음성으로 설명을 해주셨다. 나는 기쁨에 겨운 목소리로 물었다.


"할아버지. 그럼 생명을 자라게 하는 게 물이에요?"

외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말씀하셨다.


"네쉬메레야, 생명을 자라게 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성실함이란다."

이것이 내가 배운 섬김에 대한 첫 번째 가르침이다.

(레이첼 나오미 레멘, 할아버지의 기도, 17쪽)





저자의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흙이 담긴 컵을 하나 주면서 창가에 컵을 두고 날마다 물을 조금씩 주라고 했답니다. 손녀는 기대에 차서 날마다 물을 주었지만 컵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요. 그래서 손녀는 할아버지에게 컵을 도로 돌려 주려고 했습니다. 재미가 없었거든요. 할아버지는 컵을 도로 손녀에게 주면서 다시 한번 다짐을 받았지요. 잊지 말고 하루에 한 번씩 물을 줘야 한다고 말입니다.


아이는 슬슬 지겨워져서 몇 번 빼먹기도 하고, 잠들기 전에 깜짝 놀라 후다닥 일어나 살짝 물을 주고는 잠이 들고는 했지요. 그렇게 기대가 거의 사라질 무렵에 아무런 변화가 없던 컵에서 자그마한 싹이 움튼 것입니다.


아이가 얼마나 놀랐을까요? 흙 속에 숨어있던 생명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드디어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아이가 재잘재잘 자신의 놀람과 생명의 신비를 할아버지에게 말합니다. 그러다가 묻죠.


"할아버지. 생명을 자라게 하는 게 물이에요?"

당연히 올바르게 질문을 했고, 그게 정답일 수도 있었습니다.

적당한 햇빛과 습도 그리고 물이 있으면 생명은 태어나지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어린 손녀에게 기가 막힌 답변을 합니다.

"생명을 자라게 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성실함이란다."


아, 얼마나 놀랐던지요.

물이 아니라 '성실함'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습니다. 만약 성실하게 날마다 주지 않고 처음 한 번만 주고 말았더라면 물을 머금었지만 생명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랍게도 작가는 이 '성실함'을 할아버지에게 받은 '섬김'에 대한 첫번째 가르침이라고 말합니다. '성실함'이 바로 '섬김'이라는 것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뒤에 나오지만, 섬기는 것과 도와주는 것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섬기는 것은 대상을 온전히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섬기는 것입니다. 상호 동등한 입장이며 대상의 완전함을 드러내주는 역할을 합니다. 반면 도와주는 것은 도와주는 사람이 우위에 있으며 능력이 있고 도움을 받는 사람은 그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심리적인 갑을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래서 도와주는 것보다 섬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고쳐주거나 바로잡아주려고 한다면 그 사람 안에 있는 온전성이나 삶의 진수를 알아볼 수 없다. 고쳐주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전문성에 의지한다. 우리가 섬길 때에만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아직 피어나지 않은 온전성을 본다. (211~212)


새싹을 피워올리기 위해 물을 주는 행위조차도 섬김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성실함을 갖추지 않으면 제대로 섬기기 어렵습니다. 당신 안에 아직 피어나지 않은 무수한 열매의 가능성과 온전함을 제대로 바라볼 때 우리는 당신을 동행하며 섬길 수 있습니다.


도와준다는 것은 내가 당신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겸손하게 돕는다 해도 도움은 당신보다 가진 것(재능이든 물질이든)이 더 많다는 것을 은연 중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생명이 태어나게 하려면, 상대를 축복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래야 활짝 꽃을 피우고 함께 웃을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보다,

당신을 축복합니다,라는 인사로 오늘은 하루를 지내 보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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