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생각하면

이웃집 식물상담소,에서

by 봄부신 날

[죽음을 생각하면 더 선명해지는 것]




죽음을 생각하면 무언가를 결정할 때 좀 더 선명했다. 집에 물건을 적게 두는 것, 부끄러운 걸 남겨두지 않는 것, 죽고 나서의 정리,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의 양도 꼼꼼히 생각하게 되었다. 생물은 태어나면 모두 죽게 되어 있으니까. (이웃집 식물상담소, 33쪽)



엊그제 부산 어머니가 거의 50년 만에 살던 집을 떠나 이사했다. 기존에 세들어 살던 곳이 재개발 지역이 되면서 7월, 8월에 다 떠나야 했다. 정든 집을 떠나 아는 사람도 없는 곳으로 간다는 사실이 오십 평생 한 곳에서 살아온 나이 든 어르신에게 입히는 타격은 매우 컸다.



얼마 전 어머니는 갑자기 숨을 멈추며 죽음의 강을 건넜다가, 이를 발견한 요양보호사와 길 가던 행인 그리고 119 구급대원의 혼신의 힘을 다한 심폐소생술 덕분에 10분 가까이 멈췄던 숨을 토해내며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런데 그 뒤로 소유욕이 더 살아났다. 이전에는 이사하면서 이것도 버리고 저것도 버리고 다 버리겠다고 그랬는데, 갑자기 이사날짜가 다가오자 이것도 가져가고 저것도 가져가고 다 가져가겠다고 했다.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해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110볼트 전원의 재봉틀까지 가져가겠다고 우겨서 결국 버리지 못하고 가져왔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애착이 가는 물건들에 대해서는 집착을 내려놓지 못한다. 신발장 뒤에 있는 꽃삽을 꼭 가져오라고 몇 번이나 나한테 당부를 했다. 이제는 어머니가 꽃삽으로 화분을 가꿀 힘도 없고 밖으로 나갈 수 없는데도 엄마에게는 아직 꽃삽이 중요했다.



어머니를 보면서 내 죽음을 생각한다.


식물을 사랑하는 식물학자는 자신이 어렸을 때 아팠던 경험을 나누면서, 죽음을 생각하면 무언가를 결정할 때 더 단호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죽음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집착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더 선명하게 부각된다. 이것저것 자꾸 챙겨오라는 어머니 말에 동생이 짜증 섞인 말을 내뱉었다. "엄마 돌아가실 때 그거 다 챙겨가세요." 가시가 돋친 말이었다. 34도를 웃도는 뙤약볕에서 이삿짐을 정리하는 이삿짐 사람과 두 아들에게는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닌데, 어머니에게는 그 기억 속 그것들이 너무 중요했다. 자꾸 모자를 챙겨오라고 하신다. 그 모자에는 어머니가 젊었을 때부터 사회활동을 하며 받아 꽃아놓은 온갓 뱃지들이 꽂혀 있었다. 그런데 사실 그 모자는 언제부턴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지금 내가 가장 집착하고 있는 세상 물건은 책과 음반이다. 그것 외에는 글을 쓰고 싶은 욕심. 그 세 가지다. 이 많은 책들을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벌써부터 그걸 생각하고 정리해야 할까? 작은도서관이라도 열어 이웃과 함께 책얘기를 나누고 싶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잘 안다.



죽는 순간까지 책을 주문하고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 했던 이어령 선생님을 생각하며, 나도 마지막까지 책을 주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기다려야겠다 생각해보지만 이것도 지나친 욕심이다.



어느 순간 모든 걸 내려놓게 되지 않을까.


너무 견디기 힘든 순간이 올 때면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생각했다. 그러면 웬만한 고난과 고통 참기 어려운 순간들은 이겨낼 수 있었다. 부활과 영생을 믿는 기독교인에게는 사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는데, 이 세상과는 작별하는 게 맞으므로, 죽음을 생각하면, 작별하는 세상의 물건에 대해서는 더 단호하게 결정하고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옳다.



성경에도 있듯이, 자족할 줄 알아야 한다.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삶. 그것이 가장 단호하고 선명히 부각되는 죽음 앞에서의 삶의 자세가 아닐까.


오늘은 선명하게 다가오는 죽음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당신과 함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아는 시간의 행복자가 되자. 오늘은 그렇게 평생 반려자와 함께 5천원 샵에 가서 행복한 시간을 공유했다. 당신이 예쁜 키링 곰돌이 인형을 하나 사 주었다. 교회 갈 때 들고 다니는 작은 가방에 매달았다. 아마 이 작은 인형을 볼 때마다 선명한 죽음과 선명한 사랑을 생각하리라. 작고 소중했던 그날의 기쁜 5천 원의 행복한 쇼핑이 생각날 것이다.



2024-08-10 다이소_곰돌이인형.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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