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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독서후기-골든아워 1

by 봄부신 날

(독서후기) 골든아워 1 - 이국종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수원 아주대병원 외상외과에서 사투를 벌이며 죽은 목숨에 가까운 사람들을 살려온 이국종 교수는 수많은 글쓰기 요청을 거부하다 어떤 소명 의식을 깨닫고 드디어 펜을 들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가 평소 흠모하던 김훈 작가의 글쓰기 틀을 가슴에 품고 글을 썼다 했는데 실로 그러했다. 나는 마치 김훈 작가가 중증외상외과 병동에 관한 소설을 쓴 것처럼 읽었다.

실제 중증외상 환자들이 겪는 처참한 고통과, 죽어가는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집중하는 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의료기사 등의 의료인들 및 소방대원들의 분투를 정확히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훌륭한 말솜씨나 글재주와는 대척점에 선 전형적인 '이과 남자'다. 어떤 현란한 문장과 수사를 동원한다고 해도 생사의 경계를 헤매는 이들의 사투를 정확히 표현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내가 읽은 불과 얼마 안 되는 책들 중, 늘 곁에 두고 살아온 소설가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를 등뼈 삼아 글을 정리해보려 애쎴다. ... 나도 <칼의 노래>처럼 우리와, 우리가 겪어온 일들을 명확하게 기록하고 묵직하게 그려내고 싶었으나 능력 밖이었다. (11~12쪽)

그는 겸손하게 능력 밖이라고 얘기했지만, 나는 읽는 내내 마치 김훈의 소설을 읽는 것만 같았다. 내가 서평의 제목으로 삼은 "이국종,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는 김훈 작가의 책 표지에 적힌 이순신 장군에 대한 김훈 작가의 표현인데, 내가 이국종 교수에게 그 표현을 빌려다 쓰는 것에 대하여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만큼 그의 삶은 이순신을 닮았고, 이순신이 적장을 베는 칼이 순결했던 것처럼, 그가 환자의 환부를 찔러 들어가는 칼의 순결함이 닮았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 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 싶었다. 뭍으로 건너온 새들이 저무는 섬으로 돌아갈 때, 물 위에 깔린 노을은 수평선 쪽으로 몰려가서 소멸했다. 저녁이면 먼 섬들이 박모 속으로 불려가고, 아침에 떠오르는 해가 먼 섬부터 다시 세상에 돌려보내는 것이어서, 바다에서는 늘 먼 섬이 먼저 소멸하고 먼 섬이 먼저 떠올랐다. (김훈, 칼의 노래, 17쪽, 첫 문단)

이순신 -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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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스승의 날>
봄이 싫었다. 추위가 누그러지면 노동 현장에는 활기가 돌고 활기는 사고를 불러, 떨어지고 부딪혀 찢어지고 으깨진 몸들이 병원으로 실려 왔다. 봄기운에 밖으로 이끌려 나온 사람들도 늘었고, 늘어난 사람만큼 사고도 잦아 붉은 피가 길바닥에 스몄다. 병원 밖이 형형색색 꽃으로 물들 때, 나는 무영등 아래 진득한 핏물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마취과 기계들이 뿜어내는 기계음이 귓가에서 계속 울려댔다. 비릿한 피 냄새가 폐속에 깊이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매년 봄마다 중국발 황사가 시작되면 매캐한 바람이 숨을 더 틀어 막았다. 봄은 내게 피와 죽음의 바람이 부는 계절이었다. (골든아워 1, 첫 문단)

첫 문장이 칼의 노래를 닮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문장의 맺고 끊어짐은 김훈을 닮았다. 그리고 사유해 들어가는 깊이와 방향과 결이 김훈을 닮았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서술을 용케 해냈다. 마치 환자의 폐부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오는 피의 근원을 찾아들어가는 것처럼 그의 글은 김훈의 필체로 의료계 아픈 상처 부위를 깊게 파고 들어갔다.


나의 일은 수많은 블록들 사이에서 맞는 조합 하나를 찾아내는 것과 같았다. 이것이 가능하면 저것이 불가했고, 저쪽애서 합하면 이쪽에서 불합했다. 대형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중증외상 환자들은 죽어 나가거나 다른 병원으로 전원되었다. 환자들은 응급실과 응급실 사이를 떠돌다 길바닥에서 예정에 없던 죽음으로 들어섰다. 시비를 떠나서 다들 그래왔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의사들은 다른 선택지를 떠올릴 여지가 없었다. (47)

더 위험한 고강도 노동은 같은 노동자들 중에서도 계약직이나 하청 노동자들이 담당했다. 위험은 부상을 부르고 부상은 생명을 앗아가지만 위험도와 돈벌이는 비례하지 않았다. 늘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내 꼴이나 환자의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57)

나는 스스로 직장을 물러난다는 무의미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조직에서 나를 내치지 않는 한, 스스로를 깎아먹고 갉아먹으며 버티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가장 좋은 것은 '타의에 의해 잘려나가는 것뿐'이라고, 수술방에 들어서며 나는 생각했다. (71)

외상센터에 실려 오는 환자들의 삶은 대부분 남루하므로, 외상외과 의사는 환자의 사회적 위치나 배경에 치료 방침이 흔들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79)

그는 실려오는 환자들처럼 남루한 수술복 하나로 낮과 밤을 견디었고,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질투와 곡해와 편향된 시선의 칼들을 견뎌냈다. 그가 손에 쥔 칼이 환자에게만 향하고 순결하지 않았다면 결코 피해갈 수 없었을 칼의 궤적이었다.

이순신의 적들이 휘둘러댄 칼이나 이국종의 보이지 않는 적들이 휘둘러대는 칼이나 생사를 가르는 것은 같았다.

밥벌이의 종결은 늘 타인에 의한 것이어야 하고, 그때까지는 버티는 것이 나은 법이며, 나 스스로 판을 정리하려는 노력조차 아까우니 힘을 아끼라는 그의 말이 나는 틀리지 않다고 여겼다. 어쨌든 이 일은 내 밥벌이였고 병원 일도 직장생활이었으므로 나는 병원의 공식적인 지시로 관두게 될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무감각하게' 따라가기로 했다. (124)

팀원들이 있어서 혼자 버티던 날보다는 나았으나 여전히 무참한 날들이었다. 팀원들까지 나와 마찬가지로 허리를 굽히고 사정하며 버텼다. 일상이 핏물과 비난의 파도 속에 있었다. (146)

일상이 핏물과 비난의 파도 속에 있었다고 고백하는 그의 삶은 이 책 전반에 진하게 배어있다. 이 책은 핏물과도 같은 책이다. 마치 고구마 백 개를 급하게 먹고 소화되길 기다리는 것처럼 이국종의 글은 답답한 한국 의료계의 진면목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그는 사정하며 버텼고, 팀원들과 함께 있음으로 버텼고, 환자들이 살아나고 병원을 벗어나고 다시 사회인이 되는 것을 보며 버텼다. 그러나 두 발과 수술복은 늘 핏물에 젖어 있었고, 추웠고, 발이 시렸다.

죽다 살아난 어린 생명이 자라서 사회의 한 축이 되어주리라는 생각을 할 때 나는 가슴이 부풀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의미일 거라고 생각했다. (159)

그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단초가 된 것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되었다가 살아난 석 선장의 치료를 맡으면서부터다. 그러나 사실 그의 말처럼 석 선장을 맡는다는 것은 죽음의 동아줄을 잡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그 줄을 잡으려 하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썩은 동앗줄이라도 잡고 생명을 살려보려 죽음의 전쟁터로 떠난 그였다. 그는 정치를 몰랐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오직 사람만 보았다.

떨어지는 칼날은 잡지 않는 법이다. 석 선장은 무겁게 떨어지는 칼날이었다. 환자의 상태가 극도로 나쁠 때 의사들은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환자가 살아나도 공은 제 몫이 되지 않고, 환자가 명을 달리하면 그 책임은 마지막까지 환자를 붙들고 있던 의사가 오롯이 져야 한다. 그것이 이 바닥의 오랜 진리다. 석 선장이 살 가능성은 희박했고, 최악의 경우 내가 져야 할 책임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221)

대부분의 의사들은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생계 유지에 어려움이 없는데 나는 자꾸 극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나로 인해 기인되는 것인지 밖으로부터 벌어지는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행히 환자는 나의 갈등을 알지 못했으나 이제 그와 나에게 생사의 조건은 같았다. (242)

신물이 났다. 병원 안팎으로 나를 향해 겨눈 무수히 많은 칼들이 날을 바짝 세우고 희번덕거렸다. 나는 한낱 지방 병원의 외상외과 의사였다. 나의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칼을 겨누게 하는지 좀처럼 헤아랴지지 않았고 헤아리고 싶지도 않았다. 사는 것의 지리멸렬함이 지겹고 지난했다. 환자들이 쏟는 핏물이 나를 완전히 삼켜버리기를 바랐다. 내 삶에 대한 의지는 소멸에 가까웠다. 그저 나는 관성적으로 살아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생(生)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녀, 사경을 헤매던 석 선장의 의식은 점차 분명하게 이 세계로 넘어오고 있었다. (258)

골든 아워 1편을 다 읽어냈다. 이순신이 난중일기를 남긴 것처럼, 그는 김훈의 힘을 빌려 아주대학교 중증외상외과일기를 처참하게 써내려갔다. 소설이 아니라면 이 책은 유성룡의 징비록을 읽는 것과 같다. 마지막까지 숨을 참지 않고 읽어내려가기가 버거운 책이었다.

뺑뺑이 돌다 아까운 생명이 길바닥에서 버려지는 참혹한 현실을 뉴스로 들으면서, 이 책을 읽었다. 의사로서의 이국종. 생명에 대한 경외로 가득한 그의 단순하고 순수한 모습을 볼 수 있어 그래도 행복했다. 이런 의사가 있구나. 나는 아주대 응급실에 딸을 데리고 갔다가 아주 황당한 상황을 맞으며 질겁한 적이 있었다. 의사는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고 아이에게 다가가 협박하듯 말했고, 아이가 무서워 울자 자기들은 이런 상황에서 시술을 할 수 없다며 아무런 검사도 하지 않고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런데 나가려고 하니까, 병원비를 9만원 내라고 했다. 아무것도 받은 치료가 없었는데 그 돈을 내지 않으면 나갈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아주대에 대해서는 아주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이국종 의사가 있었다.

그가 많이 소개한 동료 정경원의 깊은 신앙에 대한 이야기, 없으면 안 되는 간호사 김지영의 담임목사 설교 이야기, 그리고 한국에 4대째 살고 있는 미국인 인요한 의사의 말없는 도움 그러한 영적인 것들이 이국종 의사와 함께 버무려지면서 골든아워 1에 소개된 수많은 환자들과의 사투가 완성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말씀. 이 모든 것들이 그에게 용해되어 있다. 그가 어머니와의 나눈 대화를 읽으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밥 벌어먹고 살게 되었으면 돈 욕심은 더 내지 마라.
어머니는 의사가 된 내게 자주 말씀하셨다. 밥이라고 다 같은 밥은 아닐 것이므로, 어리석은 나는 밥을 벌어먹고 사는 것과 욕심내어 더 벌어먹으려는 것의 경계를 알기 어려웠다.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얼마만큼이면 충분합니까?
-시장기를 스스로 없앨 정도면 된다.

어머니의 답은 어머니처럼 곧았다. 살아오면서 나는 있어야 할 것 이상을 바라지 않았고, 분수에 넘치는 끼니를 원한 적이 없다. 빈 그릇에 채워지는 것을 채워지는 대로 먹었다. 그리 특별하지 않은 밥을 벌어먹는 것만으로도 허덕였다. 어쩌면 나의 허기는 밥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어서 아무리 끼니를 채워도 가시지 않는지도 몰랐다. (425)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의 <칼의 노래> 첫 문장이다.

그는 외상외과를 가리켜 고립된 '섬'과 같다고 했다. 어디에서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 과였다. 아니 변변한 조직도 없었다. 그렇게 고립된 섬에서 그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다.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 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 싶었다. 2편에서는 부디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움직이는 섬으로 나아가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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