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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꼬리단상) 내가 나를 안다는 착각

당뇨와의 투쟁

by 봄부신 날

[내가 나를 안다는 착각]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작가이자 미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크 트웨인이 남긴 말이다.


(박소연, "딸아, 돈 공부 절대 미루지 마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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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화혈색소 6,5%가 넘어가면 당뇨 진단을 받는다. 나는 당화혈색소 6.5로 당뇨 진단이 나왔으나 공복혈당이 그다지 높지 않아 의사 선생님이 2개월 뒤에 다시 보자고 했다. 당뇨약 처방을 내리지 않으면서 식단 관리를 부탁했다.

이때부터 식단을 본격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기존에는 모듬쌈 채소를 기본 반찬으로 해서 먹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일반 도정 쌀로 만든 밥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우선 일반 백미를 현미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처음부터 확 바꾸면 적응하기 힘들다고 해서 일반 쌀과 현미쌀의 비중을 5:5로 해서 밥을 먹었다.

찰현미로 하다보니 밥을 먹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반찬은 채소류 중심으로 바꾸었고 단백질을 위해 두부무침과 버섯 등으로 채웠다. 2개월이 지나 다시 피검사를 했다. 지난 번과의 다른 점이라면 흰쌀밥을 모듬쌈에 싸 먹다가 현미밥으을 모듬쌈 채소에 싸서 먹는 것으로 식단을 바꾼 것 정도인데, 다행히 당화혈색소가 6.3%로 내려가 당뇨에서 벗어났다. 당뇨전 단계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상태가 호전된 것이었다. 나는 당뇨약 처방을 받지 않고 나왔다. 하지만 2개월 뒤에 다시 검사를 하자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완전 현미 100%로 밥을 지어 먹기로 했다. 내심 5점대로 내려가 완전 정상 수치가 되길 바랐다. 모듬쌈에다 현미 100%로 된 밥을 싸서 먹었다. 기대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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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원이 넘는 비용을 지출하면서 혈액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화혈색소가 아래로 내려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로 올라가 당뇨 진단을 받게 되었다. 당화혈색소 6.6%였다. 당뇨 가족력이 있긴 하지만 식단을 이렇게 바꾸었는데 당화혈색소가 이렇게 나온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 되었을 거야. 당시 혈액검사는 금식하지 않은 상태로 한 것이 아니라 아침을 먹고 식후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지난 시점에 혈액 검사를 했다. 나는 그것이 아무래도 걸려 아는 간호사 네트워크를 동원해 알아보았다. 그랬더니 공복혈당은 금식하고 측정하지만 당화혈색소는 통상 2~3개월의 평균치를 보는 것이며, 식후 2시간 정도의 혈당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식후에 측정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빠져 나갈 구멍은 없었다. 나는 그렇게 확실하게 당뇨 환자가 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긴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지난 번에 6.3%가 나온 적이 있으니까 이번에도 약 처방 없이 다시 2개월 뒤에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아내와 나는 다양한 채널을 동원해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여러 자료들을 읽어본 결과, 식후 10분에서 30분 정도는 반드시 걷기 등 운동을 해야 식단 관리가 효과를 본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침에는 힘이 없었고, 점심에는 너무 더워서 식후 거의 운동을 하지 않았었다. 저녁에만 식사를 하고 나서 걷기 운동을 했다. 이제는 아침에도 운동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식사 순서에도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채소류를 가장 먼저 먹고, 다음으로 단백질과 지방 그리고 맨 마지막에 탄수화물을 섭취해야 혈당이 천천히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채소를 먹긴 했지만 탄수화물과 같이 섭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건강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준 연속혈당측정기를 구입했다. 보름 정도 사용 가능한 센서가 장착된 혈당측정장치인데 10만원이 넘었다. 휴대폰으로 실시간으로 내 혈당을 볼 수 있어서 내심 기대가 컸다. 점점 안정화되는 내 혈당을 보게 되리라 하는 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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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앱을 통해 관찰하게 된 내 혈당은 롤러코스트였다. 소위 말하는 혈당 스파이크가 나타났다. 채소류 중심으로 식사를 하고 맨 마지막에 현미밥과 작은 고구마 하나를 먹었는데 걷기 운동을 해도 혈당은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혈당 수치가 200을 넘어서면서 주황색 경고등이 켜졌다.

다음 식사에서 아예 탄수화물을 먹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래프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했다. 나는 탄수화물에 매우 취약한 상태였다. 하루는 몸에 좋다는 메밀국수를 먹으러 갔다. 기본 웨이팅이 1시간이었다. 우리 대기 번호는 33번이었다. 몸에도 좋은 메밀. 큰 걱정 없이 식사를 맛있게 하고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혈당이 급격하게 그리고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식사 후 운동 없이 바로 앉아 운전을 했다고 해도 이건 이상한 것이었다. 밀가루가 아니라 메밀인데 왜 이렇게 당이 올라가지? 이렇게 생각하다 아내와 나는 동시에, 아! 하는 각성의 외침을 내뱉었다. 어쩐지 너무 맛있게 쫀득거리더라니. 메밀 100퍼센트로 만들어진 국수라면 저렇게 맛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뚝뚝 끊어져야 맞다. 그렇다면 사실 메밀국수에는 밀가루가 엄청 많이 들어가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우리는 메밀이 조금 섞인 밀가루 국수를 먹고 나온 것이었다. 다른 해석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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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간단하고 한끼 두부와 케일과 당근을 갈아만든 쥬스 한 잔으로 먹고, 점심은 모듬쌈을 잘게 잘라 샐러드로 만들어서 두부포와 함께 먹었다. 저녁도 같았다. 탄수화물은 아예 제외시켰다. 그리고 죽을 힘을 다해 식사 후 운동을 했다. 햇빛을 가릴 수 있는 모자도 구입하고 맘 먹고 걷기 운동을 했다. 몸무게가 최소 2킬로그램은 빠졌다. 운동장비가 있는 곳에서는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처음에는 10개도 힘들었는데 조금씩 횟수를 올려서 50개까지 늘렸다. 더운 여름철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실시간으로 혈당을 보고 있자니 식사를 하면 운동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조금 게을러지고 싶어도 혈당 올라가는 걸 보면 저절로 내 발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오늘 다시 검사를 받았다. 한편으로는 5점대로 떨어져 있길 소망했다. 그러나 내 몸은 2개월의 짧은 변화로 그렇게 큰 낙차를 허용하지 않았다. 지난 번과 같이 6.3%가 나왔다.

나는 내 몸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먹는 족족 혈당에 변화를 주는 것을 보며 내가 얼마나 내 몸에 대해, 내 건강에 대해 무지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은 투자를 잘못해서 전 재산을 날리며 저런 유명한 말을 내뱉었지만, 그 말은 내 몸에 딱 적용되는 말이었다. 당뇨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외가쪽 친척들의 끔찍한 결과로 이미 잘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나는 당뇨가 내게 그렇게 찾아오리라는 걸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당뇨전단계가 4년 전부터 나타났는데, 당뇨가 아니고 경계 수준이니까 괜찮겠지 라고만 생각했다. 4년 동안 식습관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러다 이 사단이 난 것이다.

이제 나는 내 몸을 더 모르겠다. 탄수화물만 먹으면 혈당이 급격하게 치솟는다. 앞으로도 탄수화물은 내게 큰 적이다. 그동안 먹었던 야간 라면이며,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빵이며 모두 안녕이다. 그나마 닭은 먹어도 괜찮다는 게 가장 큰 위안이다. 물론 튀김가루를 많이 입힌 치킨은 경계를 해야겠지만.

다시 2개월 뒤를 기약하며 음식과의 투쟁, 운동과의 투쟁을 해야 한다. 내가 내 몸을 잘 안다는 생각이 엄청난 착각임을 깨닫고, 철저히 겸손하게 내 몸을 관리해야 한다. 나는 핑계를 대고 합리화를 시키려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지만 몸은 정직하다. 먹는 대로 혈당에 반영한다. 내가 다시 당뇨라는 무시무시한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나와의 투쟁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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