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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지혜의 잠언이 밤하늘 별처럼 쏟아지는 책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by 봄부신 날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한줄평 : 누가 읽어도, 어디를 읽어도 삶을 관통하는 지혜의 잠언이 밤하늘 별처럼 쏟아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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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덟 살이든 여든 살이든 누구라도 읽을 수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책이죠. ... 저는 당신이 언제 어디를 펼쳐 읽어도 괜찮은 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서문에서)

저자의 꿈은 일견 소박해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도 해내기 힘든 작업에 속하는 일이었다. 나는 저 문장을 읽으면서, 정말? 그게 가능하다고? 속으로 놀라 할 말을 잃었다. 언제 어디를 펼쳐 읽어도 괜찮은 책이라니.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책이란 주인공이 있고 줄거리가 있고 기승전결이 담겨 있을 터인데, 어디를 펼쳐 읽어도 괜찮을 수 있는 책이라니, 나는 저자의 꿈을 응원하기보다 의심하는 눈으로 조심스레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제 생각에 거친 들판은 삶과 닮았습니다.

때로는 두렵지만 아름답다는 점에서.(서문에서)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배경은 거친 들판이다. 그것은 삶과 닮아 있기 때문에 사실은 거친 삶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 이 책은 거친 삶에 막 도착한 어린 소년으로부터 시작한다. 여덟 살이나 되었을까? 솨라락 책장을 넘겨보니 글자랑 그림이 엇비슷하다. 그림책인가? 그런데 안에 담긴 내용은 심오하다.

이 책의 담긴 이야기를 축약해서 단어로 만든다면, 존재와 성공, 사랑과 우정, 자유와 포기, 그리고 용기에 관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고 여리고 약한 것들이 살아가기 힘든 거친 들판에서, 작은 두더쥐는 작다는 사실만으로 위축이 된다. 그런 두더지를 소년이 감싸안는다. 넌 존재하는 것만으로 이미 엄청난 거야.

"난 아주 작아." 두더지가 말했어요.

"그러네." 소년이 말했지요.

"그렇지만 네가 이 세상에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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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는 이미 이 책을 다 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년의 이 말이 저자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의 80퍼센트는 대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 소중하고 이미 성공한 것이라고. 그러니 작다고, 약하다고, 두렵다고 물러서지 말라고, 다독인다.

"때로는 그저 일어서서 계속 나아가기만 해도

용기 있고 대단한 일 같아."

말이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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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두더지, 여우와 말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말이 소신있게 말한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하다고 말한 것처럼, 다른 큰 일을 하지 않아도, 멋지고 폼나는 일을 해내지 않아도, 그저 겨우 일어서서 앞만 보고 나아가기만 하는 것도 용기 있고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가장 우람한 말은 자신의 약점을 내어 보인다. 자신의 약함을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유로든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건 약한 모습이 아니야.

그만큼 강하다는 거야."

"너 자신이 정말 강하다고 느낀 적은 언제야"

소년이 물었습니다.

"내 약점을 대담하게 보여줄 수 있었을 때."

"도움을 청하는 건 포기하는 게 아니야."

말이 말했어요.

"그건 포기를 거부하는 거지."


어디를 펼쳐도 이렇게 아름다운 글이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소박하게 그려져 있다. 글이지만 그려져 있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은 글이 가지는 예술적인 이미지가 크기 때문이다. 글이지만 마치 그림과 같이 독자의 뇌리에 박힌다.

성공이 무엇이냐는 소년의 질문도 소년답지 않지만,

성공이란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두더지 역시 작은 미물답지 않다.

"넌 성공이 뭐라고 생각하니?"

소년이 물었습니다.

"사랑하는 것."

두더지가 대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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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덟 살 소년이 이 책을 집을 수는 있지만, 소년과 두더지, 여우와, 말이 함께 나누는 대화는 여든 살 인생 경험이 풍부한 어른이 설명해주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어른 같은 여덟 살 아이라면 충분히 거친 들판 같은 삶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물고기에서 우연히 우연히 돌연변이로 마침내 인간이 되어 아무런 목적 없이 살다가는 인생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에 대해, 존재하는 그 자체에 대해, 목적과 의미 그리고 사랑과 정체성을 인정하는 존재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당신에게 주는 의미가 더욱 각별할 것이다.

"항상 기억해.

넌 중요하고, 넌 소중하고, 넌 사랑받고 있다는 걸.

그리고 넌 누구도 줄 없는 걸 이 세상에 가져다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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