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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음악 사랑>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by 봄부신 날

<쇼펜하우어의 음악 사랑>


쇼펜하우어는 이처럼 아무런 판단 없이 음악을 들을 때 "절대적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 구절을 읽고 잠시 어안이 벙벙해진다. 쇼펜하우어가 '행복'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처음 보았다. 언뜻 반짝이는 불빛.


쇼펜하우어가 내게 말한다. 음악은 감정을 전달하지 않는다. 음악은 감정의 본질을, 내용 없는 그릇을 전달한다.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구체적인 슬픔이나 구체적인 즐거움이 아닌 슬픔이라는 감정 자체와 즐거움이라는 감정 자체를 느낀다. 쇼펜하우어는 이것을 "감정에서 추출한 정수"라고 표현한다. 슬픔 자체는 고통스럽지 않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무언가에 관한 슬픔이다.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169쪽)


소음에 정신이 팔린 사람은 음악을 듣지 못한다.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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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처럼, 인터넷이 손아귀에서 빠져 나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금욕적인 삶을 살거나, 미학적인 삶을 살거나, 명상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나는 음악을 선택한다. 물론 로시니의 음악이다. ... 멜로디에 귀를 귀울인다. ... 사심은 없지만 주의는 기울이되 반응은 없이. 마음을 달래주는 따뜻한 목욕물처럼 음악이 나를 적시게 둔다. 말 없는 소리. 내용 없는 감정. 소음 없는 신호.


나는 깨닫는다. 이 세상에서의 일시적 유예가 아닌, 더욱 풍성한 다른 세상으로의 침잠, 바로 이것이 쇼펜하우어가 음악 안에서 본 것임을. (181)


https://youtu.be/ByH3QWsP_lI?si=N5L0hWX3I5PCyP3C


로시니의 현악 음악이 정말로 아름답다는 발견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음악에 대해서만은 염세가 아닌 행복을 말했습니다. 늘 플릇을 끼고 살았고, 로시니의 모든 음악을 플릇으로 연주하기 위해 편곡했던 쇼펜하우어. 니체는 그런 그가 모순으로 가득찬 사람으로 비췄습니다.


누구라도 그럴 것입니다.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가 음악을 들을 때 절대적인 행복을 느낀다고 말하다니요. 그는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며 호화로운 생활을 했고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사상과 그의 생활은 조금은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알고 보면 많은 철학자들이 그랬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외부를 보면서 사색하는 것보다 훨씬 철학적인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악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데 도움을 주는 도구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마 쇼펜하우어가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는 동양철학에도 심취했지만 결코 명상은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음악을 듣고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때는 음악이 자기의 내면으로 스며들게 할 때였습니다. 음악이 자신의 내면으로 스며들어올 때 그는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음악이 곧 자신이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가 떠오르네요. 글을 쓴 에릭 와이너가 호텔로 돌아와 욕조에 물을 받고 위스키 한 잔을 따르고 로시니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가 무슨 음악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가 한 곡 추천해 드립니다. 로시니의 현악 소나타 NO6 D major입니다. 이스라엘 챔버오케스트라 RAMAT-GAN의 연주로 들어보겠습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쓴 에릭 와이너처럼 음악이 내게 스며들도록, 사심은 없지만 멜로디에 주의를 기울이고 들어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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