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렐 차페크의 로
헬레나 : 고통을 느끼게 되면, 로봇들이 좀더 행복해질까요?
갈 박사 : 오히려 불행해지겠죠. 하지만 기술적으로는 좀더 완벽해질 겁니다.
(카렐 차페크, 로봇, 54쪽)
헬레나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로봇이 노동을 착취당하는 것이 안타깝다. 사람들이 로봇을 마구 부려먹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 그녀는 로봇에게 감정이 없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로봇에게 고통을 느끼도록 해주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였다. 그 생각을 처음 로봇을 창조해낸(소설 속에서, 실제로는 작가인 카렐 차페크와 그 형이 만든 이름이다.) 갈 박사에게 물어본다.
로봇이 고통을 느끼게 되면, 아픔, 슬픔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고 감정을 가지게 되면서 좀더 사람다워지지 않을까.그렇다면 고통은 결국 로봇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갈 박사는 이에 대하여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로봇이 고통을 느끼게 되면 더 불행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나로서도 헬레나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결과만 따지고 본다면 로봇에게 더 큰 고통과 불행만 안겨주고 말 것이라는 갈 박사의 의견에 동의한다.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되려 한 곰처럼 사람을 동경하는 로봇이라면 몰라도, 그렇게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지 않은 로봇이라면 애초에 감정 따위는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SF영화나 SF 문학은 하이브리드 개념의 로봇을 자주 창조한다. 자연계의 돌연변이처럼 우연히 오류가 난 로봇에게 감정이 희미하게 들어간 채 창조되는 것이다.
입력된 프로그램으로만 조종 받고 행동하는 수동적인 로봇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적인 로봇이 되는 것이다.
요즘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가 빠른 속도로 세상을 훑고 지나가며 인간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한쪽에서는 더 빨리 더 업그레이드 시켜 로봇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부류가 있고, 한쪽에서는 그러다가 인류가 로봇에게 멸망이나 종속 당할지도 모른다며 개발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는 부류가 있다.
실제 인공지능을 사용해보면 그 수준이 이미 튜링 테스트를 넘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교해졌다. 회사에서는 인공지능의 힘을 빌리지 않고 업무를 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고 할 만큼 깊숙이 자리잡았다.
거의 100년이 다 되어 가는 소설 "로봇"에서 이미 로봇이 군인이 되어 전쟁을 하고 일터에서는 사람을 몰아내어 실업자로 만들고 일을 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투에서도 드론 전쟁이라 부를 정도로 로봇의 사용이 일반화되었다.
이제 사람은 사람과 경쟁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과 경쟁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야 한다. 물론 게임은 100대 0으로 인간이 지게 된다. 아, 생각만 해도 슬픈 미래다. 헬레나의 말처럼 로봇도 고통을 느끼고 슬픔을 느낀다면 앞으로의 로봇 세상은 조금 달라질까.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