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다시 일어서는 사람
[가장 잘하는 것 하기]
공황이 몰려온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함박 눈송이처럼 지구를 무겁게 덮어버리는, 소리마저 침묵으로 삼켜버리고 새하얗게 지상을 점령한 폭설처럼 공황이 몰려오면, 숨을 쉬지 못한다. 사람은 호흡으로 생명을 유지한다. 숨을 쉬지 못하면 죽는다. 그러면 죽음의 공포가 다시 새까맣게 뒤덮는다. 그러면 또 숨을 쉬지 못한다. 공황은 공황을 부르고 그 공황은 또 다른 공황을 부른다.
한갓 솜털처럼 가벼워보이는 눈송이라도 그것이 뭉치고 뭉쳐지면 거대한 나무조차도 맥없이 쓰러지는 것을, 지붕이 폭삭 내려앉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자동차들이 서로 부딪치게 하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저 조금 불안한 것 가지고 왜 그래. 라고 말하면 안 된다. 작은 것처럼 보이는 그 불안이 사람을 죽게 만든다. 그것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감기 같은 것이 아니다. 바이러스가 숨어 있는 폐렴과 같은 것이다.
공황에 맞닥뜨리면 사람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언제든지 공황이 나를 덮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 공황이 다가올 때, 마치 매트릭스 영화에서 총알이 매우 느리게 슬로우 모션으로 날아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공황을 느리게 오도록 할 수 있다.
공황은 제 속도로 다가오지만 내가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시간은 상대적이니까 우리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다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책상에 앉아 빈 여백을 만들었다. 그곳에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채우기 시작했다. 바로 글쓰기였다. 공황이 올 때, 두려워서 꽁무니를 내빼면 자빠지고 넘어지고 결국 쓰러지고 만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있어. 나는 그것으로 맞설거야. 하고 공황을 마주 보아야 한다. 직면하지 않으면 백전백패다.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아래아한글을 열어 빈 공간에 지금 이 순간, 공황이 내게 몰려오는 순간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숨이 조금씩 잦아든다. 곧 죽을 것 같은 공황이 오면 덮치면 짧게는 20분에서 1시간 가량 그 상황 속에 놓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진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나는 나를 잘 알았다.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은 책읽기와 글쓰기다. 그런데 지난 번에 책을 읽는 방식으로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오히려 책을 읽으면서 공황이 더 심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찾아낸 것이 글쓰기였다.
공황으로 인해 내가 어떤 상태가 되어가는지, 나를 관찰하며, 내 스스로 피실험자가 되어 나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나를 쓴 것인지, 나를 덮친 공황을 쓴 것인지 명확치 않다. 두 객체는 서로 뒤엉켜있다. 공황은 이미 나를 덮쳤기 때문에 지원사격병이 적군만을 온전히 겨냥해서 맞추기가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나는 그 둘을 모두 다루어야 한다. 나를 향해 목을 조여오는 공황도 살피고, 그 공황에 대처하는 나도 살핀다. 그렇게 하려면 나는 제3자가 된 것처럼 멀찍히 떨어져야 한다.
그렇게 글을 써내려가다보면 호흡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다. 내가 공황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공황이 아니라, 공황에 맞먹는 어떤 어려움이나 고난이 오더라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흙으로 빚어진 우리는 흙이라는 성질을 잘 활용할 수 있다. 흙은 느린 재료이고 원상복구 할 수 있는 재료이다. 칼로 상처를 냈더라도 손으로 문지르거나 다른 흙을 덧대어 흉터를 없앨 수 있다.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으로 그 때를 맞이해야 한다. 그 녀석을 마주해야 한다. 나를 주저앉게 만드는 어떤 것에 대해서 잠시 동안은 폭삭 주저앉아 정신을 못 차릴 수 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같은 꼴로 당할 수는 없다. 이제는 준비되었고, 내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맞설 수 있다.
나는 그것이 글쓰기였다. 나를 관찰하며 글쓰기를 하면서 나는 서서히 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글쓰기는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므로 시간을 상대적으로 늘일 수 있는 매우 요긴한 기술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장 자신 있으면 그림을 그리면 된다. 노래를 부르는 것이 가장 자신 있으면 노래를 불러도 좋다. 신에게 기도하는 것을 잘한다면 그 시간에 집중하여 기도를 하라.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것을 찾으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말한다. 나보다 글쓰기를 잘하는 사람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그 말이 아니다. 내가 그 시간에 가장 편하게 할 수 있는 것. 내가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그것을 찾으면 된다.
그리고 그것을 항상 준비해놓고 있어야 한다.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오너라. 나는 큰소리로 노래 부르리라.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두렵지만 맞설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당신은 할 수 있다. 왜? 당신이 가장 잘하는 것으로 맞서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자. 시간은 우리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