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환자와 그 이웃에게
[가장 어려운, 첫걸음 떼기]
공황장애 환자에게 가장 어려운 한 가지는 첫 걸음이다. 손잡이를 잡고 돌려 문을 여는 첫 용기, 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마주할 첫 용기, 문을 밀어 젖힐 새로운 용기, 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발을 바깥으로 향하도록 돌리는 또 다른 용기, 주저하고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내면을 잠재우는 새로운 용기, 드디어 한 걸음 발을 바닥에서 떼고 문지방에 올려놓는 힘겨운 용기, 문지방에 올려놓은 발을 다시 안으로 들여놓지 않고 앞으로 밀고 나가는 대단한 용기, 오른 발이 먼저 나갔다면 뒤이어 왼쪽 발까지 젖 먹던 힘을 끌어모아 오른 발 옆에 갖다 세우는 마지막 용기까지.
첫 걸음을 떼고 문 밖으로 향하기까지 무려 여덟 번의 용기가 필요하다. 망설임이 길어지고 주저하는 마음이 왔다갔다 하면 이 때의 용기는 무한반복하는 수준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문 밖으로 첫 걸음을 떼어놓는 일은 온 우주를 들어올리는 일만큼이나 크고 거대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어쩌면 이 일은 용기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자신과의 싸움이 아니라 온 우주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뛰어 넘었다고 생각해도 감당할 수 없고 뛰어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무력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덮쳐버리고 묻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럴 땐 차라리 손을 놓아버리고 힘을 빼 버리고 덮쳐오는 물살에 몸을 맡겨 버리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온 몸에 생채기가 나고 찢어지고 부서지고 너덜너덜한 육신이 된다 할지라도, 설령 정신마저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은 그런 상태가 된다 해도, 첫 걸음을 떼고 문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가 휩쓸려 가는 것을 선택한다.
회사를 퇴직하고 나는 그동안 묻어 두었던 온갖 쓰레기들에 파묻혀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가족들이 출근하고 나면 텅 빈 방에서 하루종일 누워 지냈다. 마치 침대와 피로 동맹결탁이나 의형제를 맺은 것처럼 그렇게 붙어 지냈다. 내게는 화장실에 가는 일 외에는, 차려놓은 음식을 먹기 위해 일어나는 일 외에는,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한달간 야간행군을 하고 돌아온 군인처럼 속절없이 쏟아지는 잠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그속에 허무와 불안과 공포가 가득 채워졌다. 나는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모든 체면 내려놓고 살려달라고,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싶은데, 나는 입술을 움직여 기도할 에너지조차 없었다. 머리는 텅 비어서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기도는 밖으로부터 와야했다. 가족이, 교인이, 목사님이 지원군이 되어 문자를 보내오고, 기도해줘야 한다. 내부에서는 힘이 없고 오직 외부에서만 가능하다.
그렇게 채워진 실오라기 같은 희망은 드디어 문을 열게 할 용기를 가지게 한다. 밥을 먹게 하고 자리를 걷고 일어나게 한다. 가족과 이웃의 끊임없는 사랑과 용기, 지원과 신뢰의 지지가 누워 있는 사람에게 흘러 들어가야 한다.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를 향한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다. 용기는 내부에서도 발현되지만 그 씨앗은 외부에서 온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흘러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나는 볼 수 없지만 조금씩 그 움직임을 느낀다.
빨리 일어나보라고 보채지 말기를. 왜 그렇게 누워만 있다고 짜증 내지 말기를. 무엇이 두려워 밖엘 나가지 못하냐고 채근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 누구보다 빨리 일어나고 싶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누워 있는 본인이라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안 되기 때문에 못 하는 것임을 이해해주어야 한다. 그러니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여도 뇌 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고, 끊임없이 신뢰와 사랑과 기도의 응원군을 보내 주어라.
그렇게 첫 걸음을 떼기만 하면, 이부자리를 털고 일어나 문을 여는 천지개벽의 역사가 일어나기만 하면 어찌 되었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꼬박 한 달 이상을 침대와 동맹을 맺고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사람에 따라 이 과정이 한 달 아니라 두 달, 석 달 또는 그 이상 걸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진득하게 마음을 먹고 응원하며 기다리되, 그가 밖으로 나간 첫 날. 마음껏 축하하고 축복해주길 바란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대하지 말고, 정말 우주와 싸워 이긴 것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렇게 축하해주길 바란다.
공황에 대한 무한반복 예지불안과 무력감, 우울감으로 힘들어하는 그대들이여. 지금은 문 밖을 걸어나갈 힘이 없지만 언젠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이니, 결코 나쁜 마음 먹지 말고, 꿋꿋하게 버텨내길.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