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사랑
[갑상선 암 진단]
심지어 자흔은 자신의 몸조차 함부로 다루었다. 옷을 갈아 입을 때 보면 얻어 맞은 사람처럼 몸 여기저기에 푸릇푸릇한 멍이 들어 있기 일쑤였고, 공장에서도 바늘에 곧잘 손이 찔리는지 검지나 엄지손가락에서 소형 밴드가 떠나는 날이 없었다. (한강, 여수의 사랑, 27쪽)
며칠 연달아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 정도로 심한 피로감이 몰려왔습니다. 정말 하루종일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3일을 그러고 보내니 아무래도 무슨 검사라도 받아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이 참에 홀수년도 건강검진을 받아보자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모 병원 의사 선생님이 갑상선 초음파를 한번 꼭 받아보라고 하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건강검진을 하면서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추가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오른쪽 갑상선에서 결절이 발견됐으며 강력하게 암이 의심된다며 소견서를 써 주고는 세포검사를 할 수 있는 병원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병원을 찾아가 다시 초음파 검사를 했습니다. 그 병원에서는 오른쪽뿐 아니라 왼쪽 갑상선에서도 작지만 결절이 보인다며 양쪽 다 검사를 하자고 했습니다.
바늘을 갑상선 부위에 찔러 세포를 떼어내는 세침검사라고 하는 것을 받고 그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3일 동안의 기다림은 힘겨운 것이었습니다. 최초 초음파 검사를 시행한 병원에서는 암 추정단계의 가장 높은 단계인 K-TIDARS 5등급을 기재한 소견서를 써 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3일째 되던 날 세침검사를 시행한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점심을 막 먹고 사무실에 돌아와 의자에 앉았을 때였습니다. 저보다 간호사의 음성이 더 떨리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가를 꺼내야 하는데,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가장 강력한 암으로 추정되는 단계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수술 치료를 시행해야 한다며 날짜를 예약하고 상담을 받으러 오라고 했습니다. 전절제를 할지 부분절제를 할지는 의사 선생님과 상의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강 작가의 <여수의 사랑>은 이번 가족 여행 때 돌아오는 길에 읽었던 책입니다. 한강 작가의 작품들이 대부분 어두운 면이 있듯이 이번 작품집도 밝은 작품은 그다지 없었습니다. 시종 일관 담담하고 어둡고 가슴을 내리 누르는 그런 이야기들로 꽉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 중에 첫 작품인 <여수의 사랑>에서 자흔이라는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자흔은 이름에서 이미 무언가 상처의 냄새가 배여 있습니다. 저는 그런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독특한 이름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잘 돌보지 않았습니다. 위에 나오는 것처럼 늘 의료용 밴드가 붙여져 있을 만큼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갑상선 암 진단을 받으면서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내 몸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함부로 대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출근이나 퇴근의 편도시간만 2시간 반에서 3시간까지 걸리는 직장생활 자체가 무척 몸을 피곤하게 하고 피로도를 증가시키는 상황인데 이에 대해 너무 무신경하지 않았나 하는 자책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 두면 당장 생활이 어려워지니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왕복 다섯 시간에서 여섯 시간을 출퇴근에 쓰는 것은 거의 날마다 서울에서 대구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나 비슷한 수준임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금 더 큰 병원으로 진료 예약을 잡고 6월 첫 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CT를 찍어봐야 림프절 전이 또는 뼈나 폐 등 다른 기관으로의 전이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하니, 긴장을 늦출 순 없습니다.
일주일 동안 이렇게 책을 못 읽은 적은 없었습니다. 초음파 사진을 캡춰해서 챗GPT에게 물어보니 생존기간이 3개월에서 6개월밖에 되지 않는 아주 악성 암으로 진단해서 하루는 누구에게 말도 하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그 암은 아니라고 합니다.
지금은 가만히 시간이 주는 위로의 공간을 누려야겠습니다.
책을 읽기 힘들면 책 읽는 것도 멈추고, 나를 어떤 목표로 몰아가지 않아야겠습니다.
그래도 오늘 아침부터는 책이 눈에 들어와 이제 조금씩 읽어보고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욕심을 부리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책 읽고 글 쓰는 일도 조금 줄이기로 했습니다.
억지로 리뷰를 쓰기 위해 시간을 빼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섯 시간 출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책을 읽고, 밑줄 친 내용을 옮겨 적고, 리뷰까지 쓰는 것에 대해 스스로 대견하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줄이고 몸을 더 쉬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이렇게 독서단상으로 여러분에게 제 상황을 설명드립니다.
혹시 조금 긴 시간 글이 올라오지 않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간간이 소식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