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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다녀와서

갑상선 암 진단

by 봄부신 날


<통증을 아는 사람>


동식은 완전한 통증을 배웠으며 그것을 아는 사람은 오만해질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육체의 무력함과, 그 무력한 육체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아는 자 앞에서는 어떤 희망도 그리 눈부시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한강, <여수의 사랑> 소설집 271쪽, [붉은 닻]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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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옆지기가 항상 묻는다.

"오늘은 어땠어? 안 피곤했어?"

"어, 괜찮았어."

"거짓말."

사실 피곤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건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물며 2시간반을 차 안에서 보내고 퇴근하는 길이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갈아탄 버스에서 내려 신호등이 보이면 뛰기 시작한다. 집으로 가는 시간이 즐겁기 때문이다.

처음 3일 가량 지나치게 피로함을 느끼고 아무래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은 병원에서 들은,

번뜩이는 칼날로 예리하게 내 이성을 깨며 가로지르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

"갑상선 암"으로 강력 의심된다는 의사의 소견.

세포검사를 하고 다시 3일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3일이 마치 3천 년 같았다.

초음파 검사 결과 K-TIDARS 5 단계 진단을 받아 암이 거의 확실시 된다는 의사의 소견서를 가지고 찾아간

세포검사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결과는 역시나, 강력한 악성 종양 의증 진단이 내려졌다.

그리고 어제 다시 의사소견서를 들고 모 대학병원엘 갔다.

거기서는 암 진단 및 중증 환자 산정 특례를 받아 병원비를 할인받았다.

이제 나는 공식적인 암 환자가 되었다.

[갑상선 암]은 암 중에서도 착한 암이라고 한다. 아무리 착해도 암은 암인지라 림프절 전이나 다른 부위로의 전이 여부는 지켜봐야 하고, 재발 여부도 점검해야 한다. 내 주변 친인척 중에서도 갑상선 암에 걸린 사람이 있는데, 림프절이며 주변 조직까지 전이되어 항암치료에 무척 고생하고 있다.

한강 작가는 그의 작품 <붉은 닻>에서 '통증을 아는 사람은 오만해질 수 없다'고 단언한다. 아, 얼마나 멋진 말인가. 얼마나 겸손하며, 얼마나 진실된 말인가. 통증과 겸손의 결합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말을 널리 전하고 싶다. 마치 복음과 같은 말이다. 모든 사람은 늙고,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진실과 같다. 사람들이 잊고 살 뿐.

아픔, 질병, 고통, 통증 또한 마찬가지다. 아픔 없는 사람은 없다. 살아가면서 평생 질병에 한 번도 걸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통증은 또 어떤가. 그런 면에서 인간은 평등하다. 신은 인간을 통증 앞에서 평등하게 만들었다.

나이가 들고 여기저기가 아파온다. 병원을 다니며 치료해보지만 그때뿐이다. 점점 녹이 슬어간다. 붉은 닻은 녹슨 닻이다. 갓 만든 푸르른 새닻이 아니라, 오랜 바람과 바닷물에 녹이 슬어 벌겋게 피부가 벗겨져 나간 닻이다.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아려오는 그런 몸뚱아리다.

우리는 지성과 이성을 모두 내려놓고 다시 아기로 돌아간다.

시간 앞에서 우리는 모두 겸손해야 한다.

그것이 진리다.


https://youtu.be/P1F3R6aqjFc?si=lzrrJ-ZdeIvq-wPS


어떤 모습이어서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당신이기에

당신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내가 병들어도, 아파도, 사랑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은 진정 나를 사랑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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