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인생이 백 살까지 이어지는 달리기라면, 어느새 나는 반환점을 돌아나온 지 꽤 되었다.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걷다 서다를 반복한다. 언제쯤이면 종착지가 나타날까 생각해보다가 이내 흐르는 땀과 피로를 이기지 못해 현재에 집중한다.
이제 곧 은퇴를 앞두고 있는 시점. 많은 동년배들이 전반전 직장군에서 이탈하여 제2의 인생을 시작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느긋한 휴가 같은 삶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행히 아직 감사하게도 월급을 받는 전반전 직장군에서 근근이 버텨내고 있다. 하지만 동물들이 자신의 죽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듯이 나 역시 직감적으로 내 전반전 직장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음을 안다. 길면 2년 정도라 생각하고 있다. 그 이상은 체력적으로도 젊은이들과 함께 지금 하는 일들을 처리해내지 못 할 것이다.
사람들이 죽을 때 순간적으로 그 동안 살아왔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한다. 물론 나도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다. 온 가족이 명절에 자동차를 타고 부모님 집에서 우리네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길이 막히자 네비게이션은 국도로 안내했고 우리는 그 지시대로 국도로 들어섰다. 그런데 처음 가보는 길이라 잠시 두 갈래로 갈라진 도로에서 멈춰선 채 방황했고, 길 건너편에서 음주운전을 하던 트럭이 과속으로 우리를 향해 돌진해 왔다. 그 수초의 시간 동안, 죽음을 직감했지만 영화에서처럼 수초 동안 지나간다는 주마등 인생 필름은 흘러가지 않았다. 그저 뇌가 하얗게 변했고 사고는 정지되었고, 아, 이렇게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만 맴돌았다. (물론 그때 기적적으로 죽지 않았기에 이렇게 살아서 이런 글도 쓰고 있는 것이리라.)
국가 통계 기준으로 보면, 나는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다. 우리네 인생은 한 시간 뒤의 일도 예감하지 못한다. 3차원의 공간에 사는 우리의 시간은 직선적이며 전방적이다. 앞으로만 달려갈 뿐 뒤로 돌아가진 않는다. 그러니 언제 죽더라도 우리는 억울해 할 수 없다. 2020년 기준으로 남자 평균 기대수명은 80세 정도이고 여자는 86세 정도이다. 이를 평균적인 통계치로 보더라도 나는 아직 죽을 때에 도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점점 나이를 더 먹어갈수록 이 기대수명은 뒤로 늘어날 것이다. 이미 장인어른은 88세이신데도 어디 한 군데 아픈 데 없어 정정하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러니 인생 전반전을 마치고, 은퇴를 기다리면서 한번쯤은 살아온 나의 과거 삶을 반추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내 인생 이야기가 뭐 그렇게 타인에게 재미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가 실패하는 것은 슬프고 힘든 일이어도 타인이 실패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또다른 색깔의 즐거움을 될 수 있다. 이미 나도 지나간 일이기에 허허 하면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고, 듣는 사람들도 이 사람은 이런 삶을 이렇게 살아왔구나, 하며 동병상련, 기대감, 호기심 등으로 귀를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타인의 삶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읽으며 큰 힘을 얻기도 하고 위로를 얻기도 하고, 또 동변상련의 느낌 아니면 그의 미래를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내 인생에는 아홉 번의 결정과 그로 인한 새로운 인생이 있었다. 첫 단추가 제일 중요하지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을 때, 아니 꼭 잘못 끼워진 단추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어쨌든 그 첫단추부터 지금의 삶에 이르기까지의 아홉 번의 단추를 하나씩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시리즈는 지극히 개인의 삶의 조각물이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즐거움, 기쁨, 호기심, 용기, 위로 같은 감정이나 정서가 전달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타인의 삶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설 읽듯이 하나씩 들어주면 좋겠다. 나름 험악한 삶이었기에, 나름의 읽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