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긴 항해라면,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한다면, 조금 안전하게 상황을 예측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항해든, 계획에 없던 바람이 불어닥치고, 먹을 것이 떨어지고 배가 뒤집히는 등 예상치 못한 일은 반드시 일어나기 마련이다. 배는 원래 계획된 항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인생은 출발지와 출발 시간이 서로 다른 긴 항해이지만 목적지는 모두 같다. 바로 죽음이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모두 동일한 목적지인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결국 인간은 목적지에 정확히 도착했는가 하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결국 성공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성공이냐 실패냐를 판단해야 한다면, 죽음이라는 최종 목적지 도달 여부가 아니라, 어떤 경로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생각과 수단을 가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 도달하는가 하는 것이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될 것이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결국 항해의 전부가 된다.
사람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아간다.
내가 태어날 국가를 선택할 수 없고, 나를 키워줄 부모를 선택할 수도 없다. 태어나보면 내 국가와ㅇ부모는 이미 정해져 있고 바꿀 수도 없다. 나랑 같이 자라날 형제 자매를 선택할 수도 없다. 혈연이란 이름으로 묶여서 벗어날 수조차도 없다, 나아가 평생 자신을 불러댈 이름조차도도 스스로 짓지 못한다.
인간은 모든 것이, 타의에 의해 규정지어지는 삶을 살아간다.그러니 그 속에서 자신의 선택,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결정하고 살아가려면, 엉겁결에 자신에게 주어진 그 모든 강제적인 환경을 극복하거나, 순응하거나, 해야 한다.
달리는 자동차를 멈추어야 할 때, 엄청난 마찰력과 함께 긴 제동거리를 가져야 하듯, 내가 스스로 꾸려가는 인생은 참으로 힘겹다. 마음을 굳게 먹고 브레이크를 밟아도 바로 정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결정할 그것은 자신의 미래를 이끌어갈 매우 중요한 항목인데, 우리는 준비도 되지 못한 채 엉겁결에 다시 그 순간을을 마주하고 만다. 바로 고등학생 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등학생이란 바로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디딤돌이고, 좋은 대학은 좋은 직장을 가지기 위한 디딤돌로 인식되고 있으니,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생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고 소중하다 할 것이다.
누구나 좋은 직장, 좋은 직업을 가지고 싶어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직을 하다보면 이력서에 필수적으로 적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최종학력과 전공이다. 요즘 블라인드 이력서라고 해서 학연, 지연을 숨기는 것도 있지만, 아직 대부분의 입사 지원서는 기본적으로 지방대학인지, 인서울 대학인지, 회사에 도움이 되는 공학이나 상경 계열 전공인지, 철학이나 문학, 역사처럼 모호한 인문학 전공인지를 따진다.
우리나라에서 직장생활을 하려면, 어느 학교를 나왔고 무슨 공부를 했는지 거짓없이 밝혀야 한다. 그러니 그 전초적인 고등학생 시절의 소중함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가 40년 가까이 되어 간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그때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 인생 미래의 방향을 이끌 매우 중요한 결정.
바로 문과냐 이과냐 하는 선택이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이 문과와 무과로 나뉘어져 있듯, 수백년이 지난 조선의 후예들도 역시 그러했다. 이제 여기 멈추어서서 당신 인생의 미래를 정하시오. 이과요 문과요?
내 삶을 문과 인생으로 살아갈 거냐 아니면 이과 인생으로 살아갈 거냐. 하는 것을 고등학교 1학년 때 결정해야 했다.
나는 이과와 문과를 결정하는 그날이 올 때까지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했고 아무런 정보도 주어듣지 못했다.
"너 어디 갈 건데?"
"그게 무슨 말이야?"
"이과 문과 말야."
나는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때서야 이것저것 주워들었지만 나는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정보를 전혀 알지 못했다.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부모도 그런 것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반 문예대표로 늘 글쓰기 대회를 나갔고, 대내외 글쓰기 상을 받았다. 독서반에 들어갔는데, 선생님이 독서의 범주를 고전책으로 정하는 바람에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고전책을 읽는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책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잘 한다는 것은, 이과냐 문과냐 하는 절대절명의 선택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당시 분위기는 문과는 공부를 조금 잘 하는 아이들이, 이과는 공부가 조금 뒤처지는 아이들이 선택했다. 10개 반 중에 문과가 4개 반이었고, 이과가 6개 반이었다.
나는 이과가 무슨 공부를 하는지, 문과가 무슨 공부를 하고 이후 대학에 어떤 전공으로 지원하는지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지 않는 이상, 친구들이 대부분 문과보다는 이과를 선택했다. 당시 분위기는 공부 잘하는 문과 아이들 틈에 끼이면 그나마 버티던 성적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계산이 우월했다. 나 역시 어떻게든 성적을 만회해보려면 문과보다는 이과에 가서 등수를 조금 더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쉽게 말해서 친구따라 그냥 이과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초등학생 때 나는 늘 우등생이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성적이 조금 내려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우등생 범주에는 포함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치른 첫 시험에서 나는 그때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처참한 실패를 경험했다. 성적표를 받아든 나는 지독한 인생의 쓴맛을 느꼈다. 앞으로의 삶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라는 거대한 먹구름의 벽을 느꼈다. 어머니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울었고, 담임선생은 가정방문을 와서 이 성적이면 대학을 갈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첫 시험 이후 매달(당시에는 매달 시험을 쳤다.) 노력상을 받으며 성적을 쭉쭉 올렸지만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낸 평균 점수와 성적은 문과를 지망하기에는 다소 힘겨운 수준이었다.
나는 그때 이과를 선택한 것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내 삶이 어떻게 소용돌이칠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가고 싶은 국문학과를 가려면 문과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는 것조차 생각하질 못했다.
나는 국어를 가장 좋아했고, 가장 잘 했다. 성적이 안 좋았지만 국어만큼은 전교 1등 수준의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수학은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곧장 수포자가 되었고, 잘 모를 때는 1 아니면 0을 적으면 정답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경험치만 가득 확보했다.
나는 늘 시인 아니면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했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그렇다면 당연히 문과를 갔어야 하는데, 수포자라면 더더욱 그랬어야 했는데, 정보도 조사하고 그렇게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나는 문과와 이과가 미래와 연결된다는 아무런 인과관계를 알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도 없이 친구따라 이과를 지원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인생이란 것이 그렇게 처음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정보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따라 단계별로 준비하고,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해야 되는 것인 줄 몰랐다.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고등학생 1학년 때 그런 인생 설계를 하기엔 나는 너무 어렸고 젊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내 잘못이다. 누군가를 탓할 수가 없다.
내 첫 단추는 그렇게 잘못 끼워졌다. 아니, 나는 내 첫 단추를 그렇게 잘못 끼웠다.
나는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이과 인생이 되고 말았다.
내가 처음으로 시도한, 내 인생의 뽑기.
그것은 나와 가장 반대편에 서 있는 이과인생이었다.
그리고 그 첫 뽑기는 지금까지도 나를 이리저리 흔들어대고 있다.
내 이력서 첫 줄에는 내 전공이, 기계공학이라는 전공이, 녹도 슬지 않고 금속이 되어 반짝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