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뽑기) 2화. 기계냐 전자냐

두 번째 뽑기-전공 선택

by 봄부신 날

고등학교 1학년 때 얼떨결에 아무것도 모른 채 선택한 이과.

문과가 부드럽고 달콤한 느낌의 그것이라면 이과는 거칠고 투박한 그것을 연상케한다. 빼빼 마르고 호리호리한 내 체격과도 이과는 맞지 않았고, 책 읽기 좋아하고 글 쓰기 좋아하는 내 적성과도 맞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당시 교회에서도 문화부장을 맡아 매주일마다 16쪽의 소식지를 발행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수학을 포기한 수포자였고, 국어를 열렬히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선택한 이과 인생은 내게 억울함과 오묘함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억울함은 이과를 선택함으로써 내가 싫어하는 과목들을 억지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과를 선택하자 당장 2학년 때부터 공부하는 과목의 종류가 달라졌다. 이과는 수학, 자연과학, 물리, 화학, 생물 이런 과목을 배웠다. 그나마 자연과학이 문과 쪽에 가까웠다.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그 외 과목들, 물리, 생물은 오로지 암기, 암기였다. 물론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암기 과목이긴 하지만 당시 선생님들은 이해보다는 무조건 암기를 시켰다. 그러니 학생들은 이해되지도 않는 내용을 그저 기계처럼 암기하기에만 바빴다. 특히 수학은 미분과 적분을 공부해야 하는 고급수학을 배워야했는데, 수포자에게 수학 시간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학교는 영어와 수학에 가장 많은 수업 시간을 배정하였고, 미분 적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그 이후의 수업 시간 모두에 대하여 허송세월을 보내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미분에 있어서 1을 계속 잘게 나누면 0에 수렴하지만 0이 되지는 않는다,는 기본 개념 수준만 이해했다. 그 외의 모든 공식은 내게 결코 뚫을 수 없는 바위와 같았다. 과연 이 공식이 앞으로 내 인생에 얼마나 중요하게 쓰일까,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았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수업시간에 멍하니 앉아 있다보면 그저 억울한 생각만 들었다. 만약 그 수학시간에 문과에 가서 나에게 맞는 과목을 공부했더라면 내 인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나는 짜릿하고 흥분된다.




이과 선택의 오묘함은 엉뚱한 곳에서 빛을 발했다.

이과에 온 친구들이 국어에 무지 약하다는 것이었다. 이과생이 더 그런 것인지, 대부분이 그런 것인지 몰라도, 대부분 친구들은 내가 수학을 힘들어하는 것만큼이나 국어 과목을 어려워했다.


나는 수학에서 멀어진 관심을 국어로 돌렸고, 내가 좋아하는 국어시간이라는 반대급부는 나를 더욱 국어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이과생에게 국어라니. 이만큼 엉뚱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시중에 나온 국어 참고서 서너 개를 구해보며 국어에 대한 열정을 더욱 불태웠고 자신감을 더욱 높이 쌓아갔다.


그랬더니, 국어 점수는 늘 50점 만점을 받거나 아니면 하나 둘 틀리는 정도 수준이었다. 당시 고등학교에서는 매월 시험을 치르고 등수를 발표했는데, 이과 반이 된 이후 내 성적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국어는 전교 1등, 영어는 보통보다 조금 잘하는 정도였다.


이과생이 되고나서 성적의 오묘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왜냐하면 수학을 포기한 사람이 나뿐인 줄 알았는데 이과생 친구들 대부분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수포자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결국 다른 친구들의 수학 수준도 나와 비슷하더라는 것이다. 수학 과목 시험을 치면 내 점수나 다른 친구들 점수나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단숨에 반에서 최상위급 수준의 등수로 뛰어올랐다. 그게 다 국어 때문이었다. 수학은 중간 정도, 영어는 중상 정도, 그런데 국어는 다른 친구들과 점수 차이가 확 벌어졌다. 국어 점수가 다른 과목의 부족한 점수를 상쇄하고도 뛰어넘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국어는 다른 과목에서도 나를 자신감 있는 괜찮은 녀석으로 만들어주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인생의 최고 위기 시기인 고3을 나름 화려하게 보냈다. 내 학창시절은 고3 때 가장 화려하게 빛났다.


하지만 여지없이 두 번째 뽑기를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바로 대학 전공이었다. 이과냐 문과냐를 선택할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대학이란 곳이 어떤 서열이 있고, 어떤 학과가 있고, 그 학과를 졸업하면 어떤 곳으로 취직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정보도 없었다. 그저 고등학교 3년을 죽어라 공부만 했고, 학력고사 시험을 다 마친 뒤에는 세계문학전집 30권, 이광수 전집 10권, 기타 등등해서 3개월간 100권의 책을 읽어내는 책돌이였다.


당시에는 학력고사라 불렀는데, 한 번 치른 그 점수로 딱 한 군데의 대학과 단 하나의 학과를 선택할 수 있었다. 뽑기 인생 중 이렇게 기막힌 뽑기가 있었던가. 나는 대학에 대해, 전공에 대해, 세상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고, 그냥 점수대로 가는 줄로만 알았다.


친구들이 말했다.

"취직 제일 잘 되는 곳이 기계과래."

"요즘 전자과가 뜬다던대?"


인생 두 번째의 뽑기는 전자과냐 기계과냐 하는 것이었다. 사실 속마음은 국문과였다. 국문과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이과를 선택한 상태에서 문과 전공인 국문과를 선택하면 감점이 있었다. 국문과를 가고 싶은 마음이 커서 부모님에게도 의사를 표명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딱 한 가지였다. 국문과 가면 굶어죽는다.


나는 부모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었다. 당시 아버지는 특별한 직장이 없었고, 늘 사업을 하다 말아먹었다. 그래서 나는 장남으로서 가정의 경제를 일으키는 역사적 기둥이 되어야 했다. 그러니 굶어죽는다는 국문과는 선택 대상에서 아예 제외되었다.


당시 공학 전공으로는 기계공학과가 대세였다. 한 과당 100명씩 받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전자공학과는 그렇게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미래 10년을 보면 전자과가 가장 인기가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걸 것이라는 예측이었지, 누구도 그것을 증명해줄 수는 없었다. 삼성전자. 대우전자, 금성전자(지금의 엘지)에서 일본에서 수입만 하던 가전제품을 국산으로 막 만들어내는 시기였다.


나는 장학금을 받을 생각과 전자과가 유망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낮은 대학의 전자과 원서를 받아들었다. 내 인생은 이렇게 진행되는 듯했다.


제일 친한 친구에게 물었다.

"어디 갈건데?"

"당연히 기계과지."


두번째 친한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나도 기계과 썼어."


그리고 그날밤, 아는 친척들의 전화가 이어졌고, 부모님은 밤새 고심했다. 아침이 되자 내게 말했다.

기계과가 더 낫지 않겠니?


친구들도 모두 기계과를 쓴다고 하니, 나도 친구따라 기계과로 바꾸기로 했다. 당시 두 친구는 나와 00고 3총사라 불리며, 꼭 붙어다니는 친구들이었다. 친구와 떨어져 나 혼자 다른 대학에서 엉뚱한 전공을 공부하는 것도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래? 그럼 나도 기계과에 갈 수밖에 없네."

그렇게 내 두 번째 단추는 다시 엉뚱한 자리에서 짝을 맞추었다.

기계과냐 전자과냐. 인생을 이끄는 거대한 절대자는 내 앞에서 두 장의 종이를 쥐고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천천히 기계과가 적힌 인생 항로를 뽑아들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1학기 수업시간에 "공업수학"이라는 과목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책은 거의 1000쪽이나 되는 것처럼 두꺼웠는데, 공업수학은 미분 적분을 기본으로 하는 과목이었다. 고등학교 때 미분이 나오는 순간 수학을 포기한 나였는데, 그제서야 내가 내 인생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기계과는 수학을 4년 동안 공부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의 심정은 말 그대로, 이대로 죽고 싶다였다. 당시 유행했던 유행가 <울고 싶어라> 와 같은 심정이었다..



물론 어려운 수학도 그랬지만, 유체역학, 재료역학 등 기계과의 모든 과목은 미분 개념을 포함한 공업수학을 기본으로 하는 과목들이었다. 미분 적분 개념을 모른 채 기계공학과 과목을 공부한다는 것은, 알파벳도 모른 채 영문학을 공부하는 것과 같았다.


아,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4년이란 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학력고사 점수 중 6점을 손해보면 문과 대학으로 신청할 수 기회가 있었다. 6점도 큰 점수였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다.


"얘, 국문과 가면 굶어죽는대."

내 영혼과 정신은 6점을 손해보더라도 국문과에 가고 싶었는데, 사업에 실패한 가정, 월급 한푼 집에 못 가져다주는 가장이 있는 집안에서 장남인 나는, 굶어죽을 수도 있는 국문과에 원서를 넣을 수가 없었다. 그저 취직이 잘 된다는 기계공학과를, 어떤 과목을 공부하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덜컥 선택하고 말았다.


소설가가 꿈이었고, 시인이 꿈이었던 나는 그렇게 문학도가 아닌 공학도가 되고 말았다. 그것도 지독한 기름쟁이, 용접을 하고, 쇠를 다루는 기계공학과를. 나는 용접할 때 나오는 연기, 기름냄새를 마시면 두통으로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내 인생의 대학시절을 엉뚱한 색으로 칠하려고 붓을 들었다.


만약, 내가 국문학과를 갔다면, 내 인생 항로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아니, 전자과를 갔다면, 금속을 용접하고 쇠를 깎고 중장비를 만드는 이런 무시무시한 직종에서 벗어났을까?


알 수 없다. 나는 내가 뽑은 기계공학과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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