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뽑기 3) 대학 지하서클 가입

by 봄부신 날

(인생은 뽑기의 연속이다 3. – 대학 지하서클, 가입해!)

(지금까지의 이야기)


뼛속까지 문과 체질인 나는 고등학생 1학년 때 얼떨결에 이과를 선택했고, 얼떨결에 친구따라 기계공학과에 진학했다. 국문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국문학과를 졸업하면 굶어죽는다는 부모님 말씀에, 장차 기울어져가는 이 집안의 기둥으로서 나 혼자 좋다고 국문학과를 갈 수는 없었고 그렇게 기계공학과를 선택했다.

기계공학과에 입학하고 받았던 가장 큰 충격은 수포자인 내가 4년 동안 고급 수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포자였던 내가 어떻게 수학공부를 공부했는지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이제 뼛속까지 문과체질은 나는, 공학 중에서도 뼛속까지 이과체질이어야 하는 무시무시한 기계공학과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이것은 거의 공포영화에 가깝다.





당시 내가 다녔던 대학교에서 기계공학과는 주간 2개반, 야간 1개반으로 총 3개반으로 학과가 구성되었다. 얼마나 인기가 좋은 학과였는지 당시 모집된 학생 수는 한 반에 100명이 넘었고 세 개 반을 합치면 300명이 넘었다. 전체 학년이 아니라 1학년만 그랬다. 그러니 기계공학과 전체 학년의 학생이 다 모이면 1,000명이 넘는 인원이 된다. 그렇게 모여본 적은 없지만 1,000명이라는 숫자는 가히 압도적이다. 만약 5명씩 한 줄에 모여 1,000명이 줄을 선다면 앞 자리에 선 사람은 끝을 보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타과에서는 우리 기계공학과를 "개과"라고 불렀다. 이건 약간의 비하, 조롱 같은 것이 섞인 호칭인데, 정말 어딜가나 부딪치고 만날 가능성이 높은 학과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런데 더 재밌는 사실은 기계공학과 학생 스스로도, "개과"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정말 존재감이나 변별력을 갖기 힘든 학과였다. 한 마디로 바글바글했다. 주간 A반과 B반은 거의 모르는 타과 학생과 다름없었다. 같은 반 친구여도 100명이 넘다보니 모두를 같은 친밀감으로 친구를 삼을 수가 없었다.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이 모여 한 반이 되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수업을 듣는 개인화가 강한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끼리끼리 모여진다. 희한하게도 비슷한 성향을 가진 친구들이 모여지고 늘 같이 밥을 먹으러 가는 그룹이 생긴다. 자리를 맡아주고 대신 출석도 해주고, 도서관에 같이 가고, 같이 공부하고 다음날 다시 만났다.




(어지러운 대학생활)


이과 문과도 모르고, 기계과 전자과도 몰랐던 나는, 시국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데모는 왜 하는지, 대학 동아리는 뭐하는 곳인지 아무 것도 몰랐다. 좋은 말로 표현하면 순진했고, 나쁜 말로 표현하면 무지했다. 몰랐다고 해서 불법이 용서받을 수는 없다. 법을 모르고 한 행동이라 해도, 고의가 아니었다고 해도 자신의 행동이 불법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법에 따라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나는 고의가 아니었지만, 사회에 대해 무지했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알지 못했다. 대학생들이 왜 데모를 하는지, 내가 입학했던 당시에 대학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대한민국이 민주화 열병을 앓고 있는지, 아니 근본적으로 민주화란 것이 무엇이며 그것 때문에 왜 대학생들이 수업을 포기하고, 학적으로 포기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가는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나는 그런 가치관에 정신을 둘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실이 너무 벅찼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집에 돈이라곤 한 푼도 가져오지 않았고, 나는 사립대학교에 입학을 한 터였다. 어머니는, 어떻게든 네 학비를 마련할 테니, 너는 다른 데 정신팔지 말고, 공부만 하라고 했다. 데모 같은 데는 절대 휩쓸리면 안 된다고 했다. 데모를 하는 대학생들은 나와 다른 차원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루는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데, 머리에 띠를 두른 학생들이 수업 중인 교실로 뛰어 들어왔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외치며 학생들은 지금 밖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중인데, 학생 수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모두 나와서 같이 동참해달라고 부탁했다. 교수는 더 이상 수업이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학생들의 자율에 맡기겠다고 했다. 나는 엉겁결에 바깥으로 나왔지만 섣불리 학생 시위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 서성거리기만 했다.

많은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며 시위 행렬에 동참했다. 여기저기서 북을 치고 화염병을 들고 경찰과 대치했다. 경찰은 학교 정문에 모여 있었다. 이미 최루탄이 몇 개 터졌는지 공기가 매캐했다. 정문이 하나뿐이었는데 그 길을 경찰이 막고 있으니 내려서 집으로 갈 수도 없었다. 어떻게 빠져나와 집으로 가게 되면 시위로 인해 길이 막혀 버스가 운행되지 못하거나 버스 안으로 최루탄 냄새가 들어와 소매로 코와 입을 막으며 참아야 했다.



대학교에서 첫 시험을 치르고 나서였다. 그동안 4지선다 시험만 치르던 내게 대학시험은 충격 그 자체였다. 요즘은 점수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대학교에서도 4지선다형이나 5지선다형 시험을 치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대학시험이라면 서술형이어야 한다는 것은 내 지론이다. 나도 한때 대학 강사로 학생들을 꽤 가르치기도 했는데 반드시 서술형 문제를 냈다. 내가 좋아하는 문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같은 것으로, 학생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혹스럽고 수업 내용과 별개로 교수와 담을 쌓게 만드는 그런 유형의 문제를 좋아했다. 물론 이런 문제를 낼 때는 사전에 미리 답안 작성 요령 가르쳐주고 낸다.


어쨌든 나는 첫 대학시험을 치르고 망했다고 생각했다. 교양과목 중심이었는데 대부분 서술형 문제였다. 듣도보도 못한 문제 유형 앞에서 나는 땀을 흘리며 답안을 작성해야 했다. 가령 한 과목의 중간고사를 예를 들면, 서술형 딱 2문제가 나왔다. 답을 제대로 찾아내지도 못햇을 뿐더러 어떻게든 중간 과정을 서술했는데 분량으로도 반의 반도 쓰지 못했다. 요샛말로 폭망한 답안지를 제출했다. 7과목 정도를 봤는데 모두 그런 식으로 첫 시험을 망치고 말았다. 다행인 것은 다른 친구들도 모두 충격을 받았고, 다들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답안을 작성해 냈다는 것이었다.

시험은 상대적이다. 나는 늘 절대평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상대평가의 득을 가장 크게 본 사람은 사실 나였다. 내가 그런 유형의 시험이 어려웠던 것처럼 다른 친구들도 그런 시험은 처음이었고, 문과 체질인 나보다 이과 체질인 친구들은 그런 문제를 더 못 견뎌했다. 그래서 나는 시험을 망쳐다고 땅을 치고도 100명이 넘는 주간반에서 4등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이게 무슨 조화인지)

그런데 성적표를 받아든 방학 날, 학교 과 사무실이라며 전화가 왔다. 학교 모 연구실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도착해보니 나를 포함해 1학년생 주간 A반과 B반을 합쳐 7명이 모여 있었다.


"여러분은 지난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청록수"(가칭)라는 서클은 학교에 공식적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서클은 기계공학과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만 가입하는 특별한 서클이다. 여러분은 거절할 수도 있지만 꼭 가입해서 함께 서클 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대략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이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학교에 공식적으로 등록하지 않은 서클이 많았는데, 대부분 학교 시위를 주도하는 곳들이었다. 부모님들도 지하서클은 절대로 가입해선 안 된다고 학교에 갈 때마다 노래를 부르던 때였다. 당시에는 식당에서 금지곡 노래를 부르면 식당 주인이나 옆좌석에서 신고하고 바로 경찰이 와서 잡아가는 그런 시대였다. 금지곡이 있었고 금지도서가 있던 그런 시대였다. 그런데 자신들이 속한 서클은 학교에 공식적으로 가입되어 있지 않다고 하면서, 가입하라고 하니 연구실에 모인 우리들은 모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말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안 되기 때문에 모인 자리에서 가입 여부를 결정하라고 했다. 우리는 잠시 밖에 나가 얘기를 하겠다고 말하고는 연구실 밖 복도로 나갔다. 우리는 갑론을박했다. 나는 속으로 주간 A, B반을 합친 200명 넘는 인원 가운데 7등 안에 들었다는 사실자체가 믿기 어려웠는데, 나 빼고 다른 친구들은 다 공부를 잘하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서클이 어떤 성격을 가진 곳인지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공부 잘하는 학생만 연락했다고 하지만 그건 허위 정보이고, 가입한 순간 어떤 위험한 상황에 놓일지 알 수 없었다.

과 선배이며 모 연구실에서 교수님을 도와 조교로 있다는 그는 더 이상의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연구실 벽에는 야구방망이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우리는 각자의 상상속에서 미루어 짐작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지하서클이라면 나는 가입할 수 없었다. 그것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당시 지하서클에 가입한다는 것은 곧 대학생활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았다. 인생의 미래가 감당할 수 없는, 영화에서나 봤던 그런 엄청난 폭풍 속으로 휘말리는 거대한 모험극이 될 수도 있었다.

우리는 몇 가지 없는 어설픈 정보만으로 무언가를 결정해야 했다. 누군가 말했다. (우리는 친한 몇 명 빼고는 서로 잘 알지도 못했다.)


"진실되어 보이던데." 누군가 말했다.


"학과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고, 교수님 연구실을 이렇게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게 위험한 써클은 아닌 것 같아." 누군가의 옆에 서 있던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지하서클이면 어떻게 하지?" 다른 누군가 옆에 서 있던 내가 말했다.

그러자 내 옆에 서 있던 얼굴이 험악하게 생긴 또다른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죽으면 다 같이 죽고, 살려면 다 같이 살자.“


목소리가 컸다. 모두 우왕좌왕 결정을 못하고 있을 때 목소리가 크면 리더가 되기 싶다. 우리는 심정적으로 그 친구의 의견에 따르기로 내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입할 거면 모두 가입하고, 가입하지 않으려면 모두 가입하지 말자.

그래.

저 선배를 믿어보자.


우리는 조심조심 연구실로 들어갔다.


"가입하겠습니다."


내 인생의 세 번째 선택, 세 번째 뽑기는 학교에서 인정해주지 않고 있는 비공인 지하서클에 가입이었다. 그 이후 나는 조금 다른 학생이 되었다. 청록수 서클의 첫번채 지침은 다른 서클이나 동아리에는 절대 가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공포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강압적이고 절대적인 지령이었다.

만약, 내가 청록수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생은 뽑기) 2화. 기계냐 전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