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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Jun 25. 2023

(전쟁을 반대하며) 살아있는 무명용사 이야기

독서리뷰

(호국보훈 독서리뷰) 살아있는 무명용사 이야기



올해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서 전쟁과 관련된 책을 읽고, 전쟁의 아픔, 전쟁의 무시무시함, 전쟁의 폭력성, 전쟁으로 인한 가족의 해체, 전쟁으로 인한 개인 정체성의 박탈 등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살아있는 무명용사 이야기]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전쟁의 한 부분을 다루는 이야기로 내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제목만으로, 전쟁용사 중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용사에 대한 발굴 이야기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숨겨진 무명용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오지 못한 군인들, 돌아왔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려 가족을 찾지 못한 군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군인이 바로 자기 자식이라며 달려드는, 아들을 전쟁에서 잃어버리고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한 수많은 가족의 가슴을 아프게 한,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바로 그런 이야기에 대한 글이었다.


"사람들이 앙텔므 망젱이라 부르는 그 군인은 전쟁 동안 행방불명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그의 경우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망젱처럼 전쟁터에서 몸과 마음을 잃어버린 이들은 30만 명 이상에 달한다. 그리고 그 수만큼의 아버지들, 어머니들, 아내들, 아들들, 형제들, 누이들, 친구들이 공식적인 행방불명 통지서 이외에 그 어떤 소식도 접할 수 없었고, 행방불명자들에 대해 결코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전쟁 기간 내내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것조차 거부하고, 점점 그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행불자들의 생환을 바라던 가족들의 고통이 어떠했을까 생각해보라.


행방불명자의 시신도, 그가 죽었다는 확신마저 없어서 결코 끝나지 않는 죽음의 공포와 맞서야만 했던 이들의 고통을 생각해보라."

(53쪽)


사망통지서라도 받았다면, 장례를 치르고, 마음속에 묻을 수 있으련만, 행방불명자들은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가족들은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란 실날 같은 희망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돌아오지 않지만, 살아 있을 가능성은 희박한 사람들.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가족들의 기나긴 고통의 세월.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비록 행방불명이라는 소식일지라도, 불안에 떨고 있는 가족들은 기대감을 갖게 된다. 살아있을까, 죽었을까? 참호 사이에서 썩고 있는 건 아닌가, 적에게 잡혀 있는 건 아닌가? 기다림 속에 기도하며 보내는 여러 나날이 이어진다." (67쪽)



그러나 더 큰 비극은, 행방불명자 남편을 사망한 것으로 법적인 절차를 밟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자식까지 낳았을 때, 갑자기, 아내만을 생각하며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고국으로, 집으로 돌아와 아내를 찾는 남편이 돌아왔을 때 벌어진다.



"법적으로 인정된 관계가 이러한데도, 1936년 징집 해당자가 나타난다. 전쟁 미망인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의 전 남편이 살아 돌아온 것이다. 그는 포로였고, 때문에 그때까지 소식조차 전할 수 없었다.


아내는 중혼을 해버린 셈이 된다. 그럼 아이는 어떻게 되나? 적자인가, 사생아인가? 아내는 두 남편 사이에서 한쪽을 선택할권리가 있는가? 만일 첫 번째 남편이 가정으로 다시 돌아오면, 아이와는 어떤 관계가 되는가? 타협이 가능할까? 해결하기엔 정말 어려운 질문들이다."

(107쪽, 1916년 [프랑스 여성]에 실린 기사)





책의 서막을 알리는 앙텔므 망젱이라는 군인은 자신의 이름은 물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기차역에서 전전하다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그리고 기사화되어 프랑스 전역 신문에 얼굴과 신체 특징이 사진으로 실린다.


이후 그 사람이 자신의 가족이라는 수많은 가족들의 집요한 주장이 이어진다. 그때까지 아들의 소식을 듣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사람이 내 아들이라며, 내 형이라며, 사실 확인을 하기 위해 달려드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법적 분쟁까지 벌어지게 된다.


"가족들은 거의 아무나 가족이라 믿을 태세이기 때문이다. 가족들 모두는 망젱의 사진을 보고 자신들이 찾는 이와 너무 닮았다며 충격을 받는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을 단지 지나친 집착 안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언론의 간청으로 사건 해결을 추진했던 의사 페네이루는 곤경에 처한다. 1923년 1월, 시련의 시간을 보내고 그는 절망적인 어조로 '내 불쌍한 환자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정말 걱정이다'라고 말한다."


망젱은 자신의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망젱의 가족은 자신의 아들을 찾을 수 있을까?


두 가족은 끝까지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망젱이 바로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며 법적 소송을 벌인다.


그러나, 망젱은 관심이 없다.

가족을 만나도 눈에 불꽃이 일지 않고, 반가움의 표시도 없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

가족으로 인정이 되면 연금이 나온다. 그 연금은 망젱의 가족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아들과 그 동안 누적된 보상금을 되찾는 일은 이 검소한 농부 가족에게는 도움이 되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망젱의 적립금과 그의 연금을 이용할 수 있다." (231쪽)


결론은 어떻게 날까?

가족이라는 주장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고, 망젱은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가족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망젱은 정신이상자로서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가 없다. 그는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망젱에게 가족을 찾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이 필요한 일이었을까?


망젱에게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망젱의 가족에게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긴 세월 동안 전쟁터에서 망가져 버린 그의 모습은 그 누구도 정확하게 자신의 아들이라고 속단하기 어렵다. 지금이야 과학적인 방법으로 쉽게 가려낼 수 있겠지만, 당시의 수준으로는 불가능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 망젱 사건 이야기를 읽으면서, 전쟁이란 결국 가족의 파괴며, 개인의 파괴 나아가 사회의 파괴라는 엄청난 재앙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기억하기를 멈추지 않는 가족과, 슬퍼하는 것밖엔 도리가 없는 가족들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게 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의 지속적인 핵 위협.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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