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 인 케미스트리
[사랑은 나를 바꾸는 것이다]
그는 낡은 운동복을 입고서 엘리자베스와 함께 쓰는 양말 서랍장을 뒤적였다. 그녀의 향기가 훅 끼쳐오자 기분이 좋아졌다.
캘빈은 자기계발 같은 걸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심지어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도 끝까지 읽지 않았다. 한 열 장쯤 훑어보고 나자, 자신은 남의 생각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를 만나고 나서는 달라졌다. 그녀가 행복하면 자신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이게 바로 사랑의 정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를 위해서 정말로 내 모습을 바꾸고 싶은 마음.
(레슨 인 케미스트리 1 | 보니 가머스 저/심연희 역)
사랑은 여러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사랑을 남녀간의 육체적인 사랑으로 보는 에로스나, 신 또는 부모의 아낌없는 헌신으로 보는 아가페로 구분하기도 한다. 또 성경에서는 오래 참음, 온유함, 시기하지 않음 등 다른 특성을 사랑의 특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결혼을 하게 되면 사랑의 정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사랑하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전혀 다른 배경의 생활 공간에서 수십 년 살아온 두 사람이 과연 사랑의 힘으로 평온과 행복을 항상성처럼 유지할 수 있을까.
자녀를 낳고 기르다보면 또 많은 생각이 든다. 자기밖에 모르고, 부모 말을 듣지 않고 미운 짓만 하는 저 녀석들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런데 오늘 책에서는 또다른 관점에서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내 모습을 바꾸고 싶은 마음.
가령, 나는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고 많이 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사랑하는 당신이 테니스를 너무 좋아한다. 그러면 나는 당신을 위해 테니스 인생을 한번 새롭게 시도해보는 것이다.
당신이 파란색을 좋아한다면, 내 옷과 신발을 파란색으로 바꾸어 보는 것이다.
나는 삼계탕을 좋아하지 않지만, 삼계탕 좋아하는 당신을 위해 식당에 같이 가는 것이다. 아니, 요리책을 보고 삼계탕 요리를 만들어 같이 먹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사랑은
당신을 위하는 것이다.
나를 희생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진정 함께 좋아하는 것이다.
당신 때문에, 당신 맞춰주느라
내가 이렇게 손해봤어.
내가 봐주는 거야.
이런 생색은 사랑이 아니다.
오늘 하루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나는 이렇게 바뀔 거예요.
왜?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그런데 많은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날 사랑한다면
당신이 날 위해 바뀌세요.
난 바뀔 마음이 없으니까.
사랑은 쌍방이지 일방이 아니다.
이런 요구는
사랑이 아니라 비극이다.
사랑은, 내가 당신을 위해 바뀌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