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by 요나

소녀는 이름이 없다. 대신 이X, 저X 등 상스러운 욕설로 불린다. 소녀는 진짜부모가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한다. 가짜아빠가 소녀를 백칠십두 번 때리고 가짜엄마가 백삼십다섯 번째로 밥을 주지 않았던 날, 그들이 진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느 날 가짜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멀리멀리 떠났고 소녀 역시 집을 나온다. 방안에 널브러진 가짜아빠를 놔둔 채, 남자에게 맞고만 있지 않고 얼굴이 메추리알 같이 매끈하고 자신을 진정으로 돌봐줄 진짜엄마를 찾으러.


‘버렸다’ 앞에 ‘잃어’가 붙으면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기분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나는 진짜부모가 나를 ‘버렸다’라고 생각한다. 그럼 좋았던 기분도 나빠지고 나빴던 기분은 더 나빠진다. 기분이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게 편하다. 사람들에게 좀 더 못돼질 수 있으니까.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으려면 못되게 굴어야 한다.
p.12


어쩌다 머물게 된 장미다방에서의 일화부터 소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방에서 소녀는 ‘언나’라고 불렸다. 자신을 잘 돌봐주던 예쁜 장미언니에게 애정이 생긴 소녀는 혹시 그가 진짜엄마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가짜엄마처럼 이상한 남자에게 휘둘리는 걸 보며 차차 실망한다. 그렇게 소녀는 장미언니의 집을 나간다.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말을 못하는 척 하며 태백시장 할머니와 인연을 맺고 친손녀처럼 지낸다. 넘치도록 따스하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소녀는 내내 불안하기만 하다. 혹시나 할머니가 자기를 버릴까 봐, 이곳을 떠나야 할까 봐. 이곳에서 소녀는 ‘간나’다.


진짜를 만나면 단번에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럼 진짜가 아닌가? 할머니도 언젠가는 장미언니처럼 나를 배신할까? …(중략)… 할머니가 진짜라면 어떤 나라도 예뻐해 줄 텐데. 내가 쥐새끼를 잡아먹는 고양이라도. 내가 도둑년에 거짓말쟁이라도.
p.86


그리고 소녀의 불안은 할머니의 아들 내외가 찾아오면서 실현되고 만다. 염치도 없이 할머니의 돈을 자기 것들처럼 쓰고, 심지어 할머니가 목숨처럼 생각하며 고이 꾸려온 식당을 마음대로 팔려고까지 한다. 결국 더 이상 버틸 수 없던 할머니는 소녀의 집을 찾아 주기 위해 경찰서로 보낸다. 소녀는 또다시 버려졌다, 라고 생각한다.


‘폐가의 남자’, 나름대로 즐겁게 지냈던 ‘각설이패’ 생활, 계속 이름 없이 떠돌아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난다. 정이 든 사람들과 모종의 이유로 원치 않는 헤어짐을 반복하는 소녀는 점점 더 인상도 사나워지고 마음속도 얼음장처럼 차가워진다. 진짜엄마를 찾아다니는 것도 지쳐만 간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얼굴들을 그리워하며 어두운 밤 속을 걸어 나간다.


마지막으로 소녀가 만난 무리는 가출 청소년 유미와 나리. 첫 만남은 기분 좋게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자기들 이름에서 한 글자씩 뗀 ‘유나’라는 예쁜 이름을 소녀에게 붙여준다. 소녀는 다른 친구들도 사귀게 되고, 그들과 아슬아슬하게 놀며 여전히 정처 없이 지낸다. 가출 청소년들이다 보니 생활이 안온하지만은 않다.


소녀는 자기처럼 가짜 취급받으며 사랑받지 못하는 인생을 사는 아이들과 마음을 트면서 회색빛 세상에 중심을 잡아간다. 그리고 나리의 죽음으로 어떤 결심을 하고, 실행하며, 충격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엄마는 아빠의 팔짱을 끼고 천사처럼 웃는다. 아빠의 얼굴엔 부끄러움과 만족감이 사이좋게 내려앉았다. 맑고 밝고 향기로운 봄날. 그 속엔 나도 있다. 엄마 배 속에서 작은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입을 하나로 모은 나. 평화야. 엄마가 배에 손을 얹고 나를 부른다.
찰칵.
카메라도 나도 사이좋게 윙크.
그 속에서 나는 평화였다.
p.295


‘평화’였으나 평화롭지 않았던 소녀의 짧은 일생은 너무나도 지독했다.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은 왜 다 가난한 사람인지 의문을 가졌던 소녀, 그것은 물질적으로는 여유롭지만 정신적으로 각박하여 전혀 주위를 살펴보지 않는 냉혹한 현대사회를 꼬집는 말이기도 했다. 소녀는 결코 소설 속 주인공일 뿐만은 아니다. 어쩌면 무심히 길을 걷고 있는 우리의 바로 옆을 스쳐간 바로 그 아이일 수도 있다. 만나면 다정히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평화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