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
일반적으로 미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예쁜’ 작품이 아닌, 철저히 현실을 직시해 치열하게 그려낸 ‘추한’ 그림들을 만났다. 근대 서양은 전쟁과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은 이렇게 위험하고 추한 시대상을 그들의 눈동자에 똑똑히 담아 강렬하게 표현했다. 이는 곧 증언이자 하나의 연대기다.
저자는 예쁘게만 마감된 한국의 근대미술에 대한 회의를 드러낸다. 조선 역시 일본의 식민 지배라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오로지 예쁜 작품만을 허용하는 예술지상주의적 모더니즘이 만연했다. 미의식은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개발됐으며 근대국가는 국민들의 미의식을 통제하려 한다고. 저자는 그 미의식에서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곧이어 이 책을 통해 ‘추’가 ‘미’로 승화되는 예술적 순간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학살과 전쟁의 시대를 고스란히 살아온 에밀 놀데, 오토 딕스, 펠릭스 누스바움, 카라바조, 고흐,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 등의 그림은 일반적인 의미로 예쁘지 않다. 오히려 잔혹하고 어리석으며 갈 데까지 가버린 악의 끝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것에서 인간의 고투와 위대함을 느낀다. 나아가 진정한 의미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고흐에 대해서 다루는 챕터는 가장 많은 장수를 할애하고 있다. 고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로 살아남기 위한 고뇌의 집념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고흐의 ‘원근법’에는 이상한 감각이 존재한다. 그는 원근법을 제대로 지키려고 했으나, 그림을 보는 이들은 물질을 뚫고 지나가 건너편에 가닿는 것을 느낀다. 이는 고흐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도 같다. 전근대 시대의 고뇌와는 다른 형태를 띄나, 고흐의 고뇌에는 우리 시대의 고뇌와도 비슷한 것을 담고 있다.
인간이기에 학살을 자행할 수 있었던 인간들. 그러나 학살을 예술로 삼을 수 있는가 하면, 그것은 또한 논란거리다. 저자는 1990년대가 전세계적으로 '기억의 싸움'이 벌어진 시대라고 말한다.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지 못한 사람들을 억지로 잊어버리게끔 하는 힘과, 그것을 파내어 기억해내는 일이 진실이라고 믿는 힘이 상충하여 격렬하게 싸워온 시대라고.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억의 싸움에 의미를 더해주는 화가들의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원색적이며 호소력이 짙다.
서경식 작가의 미술에 대한 3번째 기행문이자 전작들과는 다른 문제의식을 갖고 출간한 고뇌의 원근법.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미의식의 관점에서 한 발 벗어난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 속에 존재했던, 그러나 잊혀져가는 사람들에의 기억을 되살린다. 이 책에서 미술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근대 시대의 모순과 상처를 담은 고뇌의 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