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깅-2023.12.02(토)의 단상; 살아있는 것과 정리되는 것들
올해 하반기 중 4/4분기는 가까이서든 멀리 서든 죽음을 접하는 일의 빈도가 잦은 편인 것 같다.
가까이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약간의 거리감으로는 회사 내에서 한 직원의 외조부상, 그리고 멀게는 내가 일하는 곳이 속한 종교재단의 고위직에 계셨던 어떤 분의 비보.
(덧붙여서 글로벌하게는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 카터의 부인도 올해 최근에 별세했다지)
해당 종교가 아니더라도 이번 주 뉴스를 본 사람이면 대충은 알지도 모르겠다. 좁은 시각으로 불교계만의 빅이슈라기에는 국내에서 행하는 이 종교의 대부분의 행사는 이 대형종단이 다 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긴 하고, 이 대형종단에서 현역으로 활동하셨던 고위직급 스님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게다가 화재사건에 스님의 자살이라는 형태의 입적 비보라 충분히 자극적(?)일만한 요소가 있어 일반 뉴스에서도 다룬 모양이었다.
그로 인해 종무원들을 포함해 재단소속의 어떤 직원이든 상관없이 이 분의 영결식을 위해 이번 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나도 그중 하나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임무만 하면 되는터라 부담은 덜하지만 뭐 개인적으로는 내가 속한 팀은 지금 업계시즌이기도 해서 가을 내내 야근에 주말출근을 불사하고 있다가 겨우 한숨 돌리려는 차에 예상치 못한 경우가 발생한것에 피곤함이 더 엄습하는 것 같은 기분이지만. 여하튼 최근 내가 겪은 장례준비 중 가장 규모도 크고 심적거리감도 먼 편이라 아버지의 죽음보다 이성적인 시각이 좀 더 강하다. 그라운드를 막론하고 한 시대에 권위가 있는 유명인사의 죽음을 대하는 세상의 움직임은 마치 군무를 보는 것 같다.
앤디워홀이 그런 말을 했다지. 유명하면 당신이 거리에서 똥을 싸도(눠도) 세상은 손뼉 쳐줄 거라고. 지금의 상황에 적절한 비유든 아니든 가치의 다름에서 오는 시각이니 비유가 저급하니 뭐니 따질 건 아닌 것 같고, 내 머릿속에서 문득 떠오른 한 문장이 저것이었다.
사연이야 막론하고 죽음은 예상해 온 일이건 아니건 앞으로 죽을 것들의 손을 빌어 정리된다.
죽음은 요즘으로 치면 젊은 나이에 가서 안타깝다느니 호상이 어쩌고 하면서 죽어도 아쉬울 것 없는 나이니 하며 돈을 세듯 수개념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일이다. 복합적인 유기물로 존재하던 것이 원소와 원자로 돌아가는 일이란 한편으로는 경이롭다.
가을이 접어들면서인가 필라테스 선생님으로부터 선인장 하나를 선물 받았다. 산 것에 대한 큰 관심이라고는 나 자신 뿐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류의 식물조차 키우는 일이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데 하필 나한테 온 것이다. 미안함과 고마움의 양가감정을 느끼면서 받아 들고 왔다가 한동안은 저 상태 그대로 물만주고 최대한 빛이 잘 드는 곳에 옮겨두기도 하며 때때로 바람이나 쏘이면서 통통하게 잘 키웠다.
아니, 저 자신이 이 환경에서 잘 버텼다. 그러다가 어제 보니 맨 앞에 있던 줄기 한놈이 비쩍 말라있었다. 나중에 물을 줘도 되겠다 싶다가 까무룩 잊은 거다. 서둘러 어제 물을 흠뻑 줬고 비쩍 시든 것은 가망이 없어 보여서 뽑아버렸다. 법정스님은 생전에 난초를 선물 받으시고는 행여나 그 섬세한 것이 잘못될까 싶어 관심을 크게 두시다가 외출하시고서도 그 생각에 미쳐 문득 그것이 집착이다 싶어서 그 난초를 남에게 줘버렸다고 하시는데... 세상 생존력 강하다는 선인장을 선물 받고서도 결국 시들어버리게 하는 나는 참 나밖에 모르고 사는구나 싶기도 했다.
겨울이 깊어간다. 산 것들은 죽은 체하고 죽은 것들은 산 것들의 양분으로 회귀할 것이다. 겨울은, 그런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