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기록 002

디깅-2024.01.18(목)의 단상

by 요나윤

생신제라는 게 있다. 망자의 사후 일 년, 길게는 삼 년 안에 다가오는 망자의 생전 생일을 맞이해 제를 지내는 행사라고 한다. 유교가 팽배했던 시절의 사후제례의식 문화라 현대로 넘어올수록 그 형식은 약소화 되고 간소화되어 지역별로도, 집안별로도 방식이 상이하다고 한다. 지난해 가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겨울생이라 이맘때쯤 생신이 돌아올 때는 되었고 엄마가 예부터 전해져 오는 것이라며 저 생신제를 언급해서 알게 되었다. 생신제라고 정확하게 단어를 언급한 것도 아녔고, 나도 장례만 치르면 끝인 줄 알았지 기일도 아니고 망자의 첫 생일을 챙기는 것은 생소해서 찾아봤더니 알게 되었다. '제'라는 단어가 붙지만 제사상을 차리듯이 하지는 않고 엄마가 해놓은 음식으로 모여서 밥이나 먹자고.


나는 생전의 아버지와 번번이 갈등이 생기는 관계였다. 서로의 생일 때가 되어 마음에서 우러나와 축하의 말을 건네는 사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부모라고 다 자식이 귀하게 여겨지지 않고 자식이라고 부모가 다 존경스러운 게 아닐 수도 있음을. 이상적인 예시에만 노출돼 그렇게 학습된 것으로부터의 인지부조화를 겪으며 내 현실을 비교하게 되는 이질감은 아직까지도 나 자신을 피곤하게 한다. 늘 엄마가 가운데서 조율을 애썼지만 고향집을 떠나 살기 시작한 것도 나름으로는 이른 편에 속하는 부류였던 나는 사실 스스로 가족과의 관계의 단절을 할 수 있는 한 자초하며 지내왔고(엄마에 관한 일 아니고서는 다 데면데면), 시간이 흐를수록 소통 없는 관계는 혈연이라도 점점 벌어질 뿐이었다. 그래서 생전에도 같이 모인 적 드문 행사에 예부터 내려오던 것이건 뭐건 여전히 마음에도 우러나지 않는데 죽은 뒤에 모이는 일이 대체 무슨 의미인가 싶은 최근의 날을 보내고 있었다.


몇 번의 상의 끝에(디테일이 더 있긴 하지만) 결국 엄마 혼자 가볍게 보내기로 했다. 처음부터 엄마가 음식한 것으로 남은 직계가족이나 모여서 가볍게 밥이나 먹자는 것이긴 했지만 예로부터 전해져 온다는 관습을 행하거나 행하지 않는 것으로 나 자신이 무정하고 불효의 프레임을 스스로 씌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내내 불편한 감정이었다. “그래도” 사람은 착했어,라는 최소한의 것으로 평생을 고생하고서도 아버지를 먼저 보낸 상실감에 깊이 빠져 있는 엄마를 대하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라는 접속사 안에 미처 다 말하지 못한 한 인간의 단점들이 희석되는 것도. 관습과 전통의 모호한 개념아래 생각이 다른 개인이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부정의 프레임을 씌우게 되는 건 누적된 시간만큼 그 구속력도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속한 시대상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삶은 늘 부침이 있을 수밖에.

작가의 이전글단상기록 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