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17 서울에 돌아온 기분
서울역에 도착하니 얇은 코트사이로 냉기가 훅 들어왔다. 삼면이 바다라는 작은 반도나라에서 고속열차로 세 시간 거리의 온도차가 3도인데, 그 차이가 이렇게나 크다니. 서울로 돌아왔다는 정신이 들었다.
가을이 불과 두 달은 있었던가. 냄새로 느껴지는 계절의 변화에는 늘 놀라울 따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 기운.
다른 날들과 달리 서울의 방으로 돌아오는 길이 길게 느껴졌다. 택시를 타려다가 굳이 버스를 탄 이유는 그저 눈앞에 타야 할 버스가 보였기 때문이었지만 아쉽게도 놓쳤다. 십 분을 더 기다려서 버스를 탔다.
돌아온 서울의 방은 지난 주말 간 사람 없이 냉기가 서려있었다. 아니, 원래 이 방이 이렇게 추웠나. 아무리 추운 날씨여도 바람이 들어올 자리가 좋지 않아서 약간의 온기는 있었는데.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십오 년 만에 처음으로 들지 않았다. 조금 외롭다고 느꼈다. 어쩌면 방 안에서 느낀 차가움은 서울역에서부터 가져온 공기였을까. 서울 방으로 도착하자마자 조명을 있는 대로 다 켰다. 보일러도 틀었다. 딱히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냄비에 물을 받아 라면을 끓였고, 빛과 열을 낼 수 있는 건 모조리 다 켰다. 고작 이틀의 시간 동안 어둠 속에서 차게 식은 이 방 한 칸에 숨이라도 불어넣는듯한 의식을 치른 듯했다.
주말 간 엄마에게 다녀왔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집 없다고,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지만 사연이 있는, ‘우리 집’도 그런 집의 가족 중 하나였다. 이삼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드디어 자유로워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자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엄마의 마음 어딘가에서는 잃은 것에 대한 공허가 자리 잡은 것 같았다.
엄마는 천천히 주변을 정리 중이었다. 엄마가 남겨주는 것들은 유용한 것들이지만 그저 반갑지만은 않았다. 이걸 내가 잘 관리할 수 있을까, 서울역에서부터 느꼈던 냉기는 어쩌면 아직까지는 딱히 기댈 곳 없는 상태로 혼자 남을 준비를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에 대한 압박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날씨가 갑자기 차가워지는 거, 내려갔다 올라오는 이동, 엄마의 나이를 실감한 순간 같은 것들이 조용히 쌓여 있다가 오늘 딱 ‘턱’ 하고 걸리는 것.
방의 온기가 서서히 올라왔고, 끓여둔 라면은 불어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잠깐 서럽게 울었다. 스스로 몫을 줄여가는 엄마의 모습이, 엄마의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 온몸으로 서러웠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의지만 될 일이던가, 함께 있어도 외로운 이는 늘 외로운 일이다. 생과 사의 현장에는 대체로 홀로 시작해서 홀로 끝나는 것을 누가 모를까.
마음이 잠깐 자리이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