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유교걸의 태국 성장기

55세, 일상 속 '제3의 성'을 마주하며 배운 것들

by 최연

치앙마이행 야간열차: 낯선 설렘과 뜻밖의 '룸메이트'


오래전부터 치앙마이에 대해서는 익히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101일 여행 계획에서 태국 여행 일정에 방콕 다음으로 치앙마이를 넣었다.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가는 방법은 보통 버스, 기차, 비행기인데, 야간열차의 특별함을 경험하고자 미리 예약했다. 내 경우는 예약 바우처를 티켓으로 교환해야만 승차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예약 시에는 침대 아래 칸, 윗 칸 선호도만 묻고 확정은 해주지 않았으며, 확정된 자리는 메일로 나중에 받게 되었다. 다행히 밑에 칸이라 편하게 가겠구나 싶었다.

그 전날 티켓 교환을 위해 이미 와 봤던 곳이라 장소는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짐을 자리 아래쪽에 놓고 잠시 있으니, 커다란 배낭을 멘 태국 친구 한 명이 내 앞쪽 자리에 앉으며 인사를 건넨다. 첫인상부터 무척 사교적인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서 흔히 느끼는 어떤 벽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180cm의 푸파: 성(性)의 경계가 흐려지다


기차가 서서히 방콕 시내를 벗어나며 지하철역들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중 한 역을 가리키며 그 친구는 자신이 그 역의 역무원으로 일한다고 했다. 자신의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 점심 식사를 주로 패스트푸드로 해결한다는 얘기 등을 하는 사이 기차는 교외의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우린 통성명을 했다. 그 친구의 이름은 푸파(Phufar)였는데, '산+하늘'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 친구는 "우리는 룸메이트!"라고 농담하며 분위기를 좋게 이끌었다. 180cm가 훌쩍 넘을 것 같은 키에 남부럽지 않은 체격의 친구였다. 당연히 씩씩하기만 할 것 같던 이 친구는, 태국어 특유의 억양과 뒤섞여 말소리가 아주 살갑게 들렸다. 말투뿐 아니라 다른 이를 챙기는 모습도 동성인 여자 친구와 있을 때 느끼는 그런 느낌이었다.


완고한 K-유교걸, 낯선 호의 앞에서 흔들리다


그러던 중 그 친구는 식당 칸으로 가서 밥을 먹자고 했고, 나는 저녁을 이미 먹은 지라 얼떨결에 '과일이나 먹자'는 심정으로 따라나섰다. 식당 칸은 이미 많은 사람이 있었고, 식탁마다 꽃이 놓여 있어 분위기가 산뜻했다. 그 친구는 저녁을 먹으며 태국 사람들이 뒷담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해 말했다. 식사를 하며 보인 그 친구의 식사 예절은 다소곳한 여성이 보이는 태도와 매우 흡사했다. 이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안에서 '큰 물음표'가 커져만 갔다.


'나는 이 친구를 남성으로 대해야 하나, 아니면 여성으로 대해야 하나?’


이 물음은 그 친구가 '빠 퐁 삐앙(Pa Pong Piang)'에 함께 여행 가기를 제안하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모든 것이 너무 부드럽고 친근하게 가고 있는 와중에, 호의를 와장창 깰 수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그곳은 그의 절친 집이 있고 그곳에서 머문다고 하니, 태국 현지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여행자로서의 나의 자아는 가라고 속삭였다. 하지만 완고한 'K-유교걸'의 자아는 위험 신호를 보냈다. 두 자아가 한참을 옥신각신하며 싸움을 계속했다.


마음의 갈등: 성(性) 정체성에 대한 나의 의문


그 친구는 이미 숙박비를 지불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곳에 묵게 된다면 반을 부담하면 되는 것이었다. '현지인 친구가 있으니 여행은 상당히 부드러울 것이다'라는 속삭임이 마음속에서 지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그 친구에 대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첫 번째 질문은 그 친구의 성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었다. 겉모습은 남자지만 태도나 말씨는 여성의 그것과 흡사했다. '내가 태국어를 알아들었더라면 그 친구가 자신을 여성으로 지칭하는지 남성으로 지칭하는지를 알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어쨌든 난 태국어를 몰랐고, 나의 의문은 계속되었다.

그 친구는 식당 칸에서 차를 마시자고 말했고, 주문과 계산을 그 친구가 하는 바람에 난 더 큰 부채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호의를 받으니 그 친구의 제안을 거절하기 더 힘들게 되었다. 일단 알겠다고 말하고 이틀 후 치앙마이에서 보기로 했다.


두 달 후폭풍: 혼란의 본질을 깨닫다


다음 날 새벽, 치앙마이 바로 전 역인 사라피에서 그 친구는 내려서 일정을 이어갔다. 치앙마이에 숙소를 잡은 나는 그곳에서 이틀 동안 마음의 갈등을 느끼며 보냈다. 결국 나는 그 친구에게 제안은 감사하지만 동행하기는 힘들겠다고 했다. 대신 감사의 의미로 타패 게이트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그 친구 말에 의하면, 자신은 언제나 여행에서 만나는 친구에게 손쉽게 그런 제안을 한다고 한다. 나 같은 내성적인 성격의 내향인에게는 어림없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그 후 헤어졌다.

만남은 두 번이고 매우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지만, 그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다. 두 달여 정도 흐른 지금에서야 왜 혼란스러웠는지 그 본질이 보인다. 그 혼란은 '남녀의 성 역할이나 성 정체성을 이분법적이고 완고하게 범주화했던 나의 사고방식에 대한 충격이고 타격이었다'.


55세의 성장통: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그 친구를 봤을 때 내가 어떤 위치와 태도를 취해야 할지 알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문화적 충격에 휘청거렸다. 태국이 처음이었던 나는 곳곳에서 '제3의 성'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보았고 지나쳤다. 하지만 길게 보거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내 경계를 넘어와 상호 작용을 할 때, 미지의 것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꼈다. 이것은 '나의 지평을 넓히려고 하는 여행의 본질적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이었다'. 지금 와서 보니 그렇다는 말이다. 과정 없이 얻는 결과는 없다. 혼란과 불확실성을 거치며 나아간다면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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