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날따라 편의점에서
위스키 미니어처가 눈에 띄더라.
제일 저렴한 걸로다가
별생각 없이 사 버렸는데,
생각보다 든든했어.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힘들고 짜증 나고 억울할 때가 생기면
그냥 따서 마셔버려야지 마셔버려야지
되뇌면서 놔두었는데,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넘게 지났는데
아직 그럴 일이 없었어.
그냥 마셔버릴까 보다 스리살짝
고민은 안 했다면 거짓말이지만,
업무 중 음주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닌 거 있지 ㅋㅋㅋㅋ
<소공녀>의 미소를 보면서
미소가 위스키를 좋아하는 마음은 가짜라고
치기 어린 마음에 비웃었던 적이 있어.
미소가 위스키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위스키 바에 가서 샷으로 마시는 게 아니라
남대문에 가서 보틀 통째로
떼 왔어야 했다며 말이야.
이제는 잘 알겠어.
미소는 하나에 꽂혀서 주구장창
조져라 파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종류를 조금씩 조금씩
이것저것 맛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나저나 제임슨아 너는 꼭 청동 거울 같구나.
거울아 거울아 스스로 조금 더
완성된 직장인이, 어른이 되게 해 주렴.
그리고 사실 난 아이리쉬보단 아일레이야.
위스키, 레스트 인 피스 인 마 사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