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고 묻는 우리의 질문은 불필요한 어른식 접근이 아닐까
나에게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 친구가 있어요. 우리가 친구가 된 건 아니, 유니우가 나를 친구로 받아준 건 그 아이가 7살이 되던 해였어요. 비폭력 젠틀맨 유니우… 착하고 폭력과 다툼을 싫어해 유치원에서도 평화의 수호자인 유니우는 그런 성격 때문에 실속을 못 차린다고 아이 엄마의 속상한 투정을 들은 적도 여러 번 있어요. 하필 자기의 약한 부분을 닮아 할말도 제대로 못 하고 자기보다 남들을 먼저 생각하느라 요즘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런 유함이 오히려 유치원 여자애들에게 통했는지 인기가 좋았나 봐요. 아 그래도 유니우는 나를 그 아이들보다는 좀 더 좋아한 것 같아요. 아래 사진이 증거입니다.^^
니우 엄마는 자매가 없어요. 그래서 친이모가 없는 유니우는 나를 유독 잘 따랐어요. 하지만 그건 내가 특별히 뭘 잘해서가 아니예요. 말을 하기도 전부터 보고 알았지만 특별히 친절했다거나 맛있는 걸 많이 사주고 용돈을 준 적도 없거든요. 그저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심심하면 육아휴직 중이던 니우 엄마에게 밥을 내놓으라며, 쌀이 떨어졌으니 쌀을 좀 달라며, 치킨을 먹자며 찾아갔을 뿐이에요. 유니우는 그런 날에 옆에 붙어있던 조그만 옵션 같은 존재였어요.
너보다는 이모가 더 잘 먹어야 해. 왜냐면 니가 좀 더 오래 살 거고 맛있는 걸 먹을 기회도 훨씬 많을 거니까. 확률적으로 그렇다고…
사실 나는 아이들에게 양보란 걸 잘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맛있는 것도 내가 먼저 먹어야 하고 좋은 것도 내가 먼저 가져야 합니다. 아이들보다 그래도 내가 살 날이 짧다는 그럴싸한 핑계도 있어요. 하다못해 물박이 타투를 골라도 내가 먼저 골랐거든요. 왕딱지를 따면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며 돌려주지 않고 집에 가져갔습니다. 자주 만나서 놀았지만 사실 제 멋대로였어요. 그런데도 니우는 내가 가지 않는 날엔 “고양이 이모는 언제 와?”라며 자주 내 소식을 물었대요. 옆집에서 놀고 있다가도 내가 가면 친구와의 놀이를 접고 보러 왔어요. 하루는 니우 엄마가 니우에게 물었어요.
“어째서 할아버지보다도, 지호보다도 고양이 이모가 더 좋아?? 엄마는 이해가 안 되네~ 고양이 이모는 먹을 것도 양보 안 하고 타투도 장난감도 양보하지 않잖아”
그러자 니우는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말했대요.
엄마~고양이 이모 내 친구잖아!!!
친구가 되었습니다. 7살의 유니우와… 아마도 수준이 똑같아서 그랬던 것 같다고 니우 엄마는 얘기합니다. ‘저 아이는 예쁘니까’ ‘저 아이는 부자야’ ‘저 앤 맛있는 걸 잘 사주지’ 하는 계산은 애초에 없이 단지 “친구이기 때문에 좋아” 라니… 이유가 있어야 좋아할 수 있다는 접근, 처음부터 왜 좋냐는 어른의 질문이 잘못된 거 아닐까요? 이 콩알만한 녀석이 나를 친구라 부르는 게 너무 귀여웠고 계산없는 그 순수함이 예뻐서 그 뒤부터는 나도 내 친구 유니우라고 불러 왔어요.
맘껏 부리는 어리광은? 혀 짧은 소리는?? 과연 우리가 어려도 되는 시절의 끝은 누가 정해준 거야.
그런 귀엽던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자꾸 어른 인체 합니다. 사실 3학년이라도 어리기만 한 니우는 재작년에 갑자기 외동에서 오빠가 되어버렸거든요. 자기보다 작고 어린 존재가 생기고 나서 유니우는 ‘너는 오빠잖아’라는 말에 어리광을 줄이고 양보를 많이 해야 했거든요. ‘언제까지 혀 짧은 소리 할 거냐’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내 어린 날이 겹쳐지면서 조금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어린 날에는 사회에 맞춰 변해야 하는 것에 대한 인지가 더디잖아요. 어디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아요. 7살에는 혀가 길어질 거라던지 8살에는 말을 2/3로 줄여야 하며, 9살에는 젓가락질을 하고 부모님께 존댓말을 써야 한다...(나는 혀는 조금 길어졌지만 아직도 말이 많고 엄마와 말을 거의 트고 지냅니다.)
하루는 저녁 산책 겸 호수공원에 갔다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경주를 했어요. 니우의 킥보드와 내 자전거의 대결. 물론 나는 여전히 양보하지 않아요. 몇 번을 이기고 뒤따라 오는 킥보드 앞에서 의기양양한 얼굴로 까불지 말라고 외쳤죠. 그렇게 함께 한참을 달리다 보니 니우 엄마와 거리가 좀 멀어졌어요. 그때까지 용감한 척, 나를 이겨보겠다고 기를 쓰며 쫓아오던 니우가 자꾸 뒤를 돌아보며 걷는 속도를 늦추며 물었어요.
“이모~ 엄마가 집에 먼저 갔을까요? 우리 집 어딘지 알아요? 혹시 거기까지 같이 가줄 수 있어요?”
그 동글동글하고 걱정스런 눈이 얼마나 귀엽던지요. 어른 인척 하고 자기 입으로 “나 사춘기야” 하면서 반항을 해도 엄마와 떨어진 요런 밤이 무서웠던가 봐요.
어제는 계획에 없이 니우네 집에서 저녁을 먹고 한참을 놀았어요. 집에서의 니우는 자신이 “사춘기”임을 명시하고 자꾸 혼자만 있더라구요. 이모랑 사진 찍을래? 하면 일부러 괴상한 표정을 짓고 이불로 얼굴을 가려대면서 말이죠. "우리 오늘 커플 나시야" 하는 말에 갑자기 아니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요 근래에는 그랬어요. 서로 바빠서 니우네 집에서 밥을 먹는 일도 줄었고 니우를 만나는 일도 줄었어요. 그리고 가면 돌아오기 바빴거든요.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니우 니가 변할 수가 있어…
놀다 보니 너무 늦어져 제가 하루 자고 가기로 하자 그제야 내 친구로 돌아온 니우는 옆에다 베개와 이불을 깔더라구요. ‘어차피 밤이 되면 돌아갈 이모’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내내 겁났던 모양이에요. 이모가 가고 나서의 그 상실감은 어린날 나도 매 명절 때마다 겪어왔던 기분이에요. 명절에 헤어지기 싫았던 친척들이 가고 나면 서운해서 눈물이 나던 맘 있잖아요. 그 맘이 보이니까 어쩐지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어요. 나만 두 맘이 같은 거라 생각하는지도 모르지만요.
추워서 에어컨을 껐는데 옆에 딱 붙어서 잠든 니우의 체온에 이내 더워진 나는 새벽까지 잠을 설쳤어요. 하지만 오랜만에 집에 가지 않고 한 밤을 보내는 친구 ‘고양이 이모’ 옆에서 유니우는 자면서도 신이 난 모양이에요. 잠결에도 내 손을 잡고 확인을 하고 내 팔을 끌어다 베고 뒹굴거리며 잠이 듭니다.
어려지고 싶은 이모는 작은 니우와 수준이 꼭 맞을 수 있는데 어른인 척 유니우는 곧 이런 이모와 놀기 싫어지는 게 아닌가 몰라요. 사춘기 내 친구 유니우가 조금만 더 천천히 자라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던 아주 뜨거운 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