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기억①피자

나그네의 소울푸드

by 스털링

피자를 처음 먹은 건 2000년대 초반 유럽 배낭여행을 하던 때였다. 정확히 말하면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에서다. 작은 테이크아웃 피자 가게에서 사 먹은 1.5유로 짜리 조각피자의 맛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왜 그때 먹었던 피자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선명할까?

아마도 그 조각 피자가 내 생애 첫 피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지금까지 먹어본 피자 중 손에 꼽을 만큼 맛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각피자가 이 정도면, 레스토랑 피자는 얼마나 맛있을까?’ 싶어 저녁에는 맘먹고 레스토랑을 찾았다. 그러나 정착 레스토랑에서 먹은 피자는 내 인생에서 가장 실망스런 피자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두번 째로 먹은 피자는 시카고 피자다. 출장길에 동료들과 들렀던 시카고의 유명 피자집이었다. 시카고 피자는 맛은 기억이 나지 않고, 그 압도적인 크기와 두께만 기억에 남아있다. 동료 둘과 셋이 먹었는데 반 이상을 포장해서 가져왔다. 피자 한판으로 헉헉 대던 우리와는 달리 옆 테이블의 가족은 넷 명이 큰 사이즈의 피자 네 판을 먹어치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 가족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할 뿐이었다.


십수 년 전 분당 정자동에도 화덕에 직접 구운 피자를 파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점심에 직장 동료들과 가끔 갔었는데 각자 파스타를 주문하고 피자는 한 조각씩 나눠 먹곤 했다. 10분 내에 밥을 뚝딱 먹고 나오던 구내식당을 떠나 외식을 할 때는 모두 행복해 보였다. 파스타는 물론 피자도 맛있는 레스토랑이었지만, 베니스의 골목 피자를 능가하진 못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사실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기록이다.
음식의 절대적인 맛보다 그 순간의 상황, 감정, 외로움, 위로 같은 것들이 결합해서 기억에 저장된다. 베네치아 피자가 갓 구운 얇은 도우였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 어떤 종류였는지는 이미 흐릿해졌다. 하지만 그 조각 피자는 배낭여행 후반부의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준 작은 선물 같은 음식이었다. 그리고 주머니가 얇았던 여행 중, 50유로가 넘는 레스토랑 피자에 실망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그 골목에서 풍겨오던 갓 구운 피자의 향이 내 코끝을 설레게 한다.
맛은 잊혀져도, 그때의 경험은 잊히지 않는다. 좋은 기억, 좋은 경험은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다시 베네치아를 찾는다면 그 피자가게는 남아있을까?

또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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