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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리스 게임하면 살이 빠진다?

심리학으로 '언플'하기

  심리학 연구를 소개한 한 언론사의 기사 하나가 화제가 되었다. '음식 먹기 전 테트리스 게임하면 식욕 감퇴 <英 연구>' 테트리스를 수 분 간 시행했던 실험 집단이, 테트리스를 하지 않았던 통제 집단에 비해 식욕이 더 낮았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기사였다. 그러나 해당 기사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N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해당 기사에 대한 부정적 댓글들



  사실 이 연구는 테트리스를 '찬양'하려는 목적으로 실시된 연구가 아니다. 테트리스 게임을 만들거나 유통하는 업체로부터 특별히 후원금을 받았던 것도 아니며, 저자가 테트리스광이어서 자신이 즐겨하는 테트리스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연구도 아니다. 연구 논문을 직접 확인해보면 연구자들이 실험 도구로 테트리스를 가져온 이유는 정작 다른 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지심리학에서의 '정교화된 침해 이론'에 따르면 식욕이나 성욕 등 인간의 기본 욕구(craving)들은 내·외부에서 들어온 시각적, 청각적 욕구 관련 자극들이 심상의 형태로, 어떻게 인간의 작업 기억 과정 속에 오래도록 보존되는지에 따라 유지되거나 증가한다. 우리의 식욕을 부추기는 심상들은 시공간적 기억의 형태로 우리의 단기 기억 저장고 안에 존재하면서 우리를 계속해서 자극한다. 연구자들은 테트리스가 식욕에 관한 이러한 인지적 과정을 교란, 결과적으로 식욕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낳을 것으로 예측했다. 왜냐하면 테트리스가 바로 우리의 시공간적 기억의 활용을 요구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해당 연구의 핵심은 식욕이 우리의 시공간적 인지 기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음을 실험을 통해 밝히는 것에 있었다. 만약 시공간적 기억을 사용해야 하는 테트리스에 의해 식욕이 감소된다면, 식욕과 시공간적 기억 간 직접적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 된다. 그러나 테트리스를 시행한 실험 집단과 그렇지 않았던 통제 집단 간, 식욕에 대한 어떠한 차이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식욕과 시공간적 기억 간에는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곧 우리가 기사에서 알아차렸어야 할 '진짜' 실험의 목적이었다. 테트리스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을 따름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테트리스 뒤에 있는 '진짜' 가설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중들이 이러한 연구의 '속사정'을 알 길이 없다. 언론은 보다 쉽고, 흥미 있는 기사를 내어 놓아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구구절절 연구 내용들을 소개하지 않는다. 가십거리처럼 포장된 기사들을 볼 수밖에 없는 대중들은 '저런 것을 왜 연구하는가?', '쓸데없는 연구다' 등의 부정적인 의견들을 쏟아낼 수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대중들이 주로 심리학 연구를 접하는 통로가 이러한 언론 기사 등으로 편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며, 그에 따라 심리학에 대한 오해는 나날이 깊어져만 간다는 사실이다.



전문가가 나서서 '올바르게' 설명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출처: Skorka-Brown, Andrade, & May, 2014).



  심리학은 인간 보편의 심리적, 행동적 경향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예측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을 이롭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때로 그것이 당장 우리의 일상에 구체적인 실천 목록을 제공하지 않더라도, 심리학이 다루는 연구 주제들이 종종 토론의 대상이 되어 결과적으로 우리들의 사고·행동 습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여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심리학은 분명 우리에게 이롭다. 하지만 오로지 자극적인 제목으로 대중들을 호도하는 언론 매체들에만 의존한다면 대중들은 심리학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으며, 그에 따라 대중들이 심리학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점점 멀어진다. 심리학 연구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들이 그들의 연구 결과를 언론 매체들에만 내맡길 것이 아니라, 직접 세상으로 나와 그들의 연구 성과들을 직접적으로 알려야 하는 이유다.



*참고 문헌

Skorka-Brown, J., Andrade, J., & May, J. (2014). Playing ‘Tetris’ reduces the strength, frequency and vividness of naturally occurring cravings. Appetite, 76, 161-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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