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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편견이 줄어든다

상상 접촉(imagined contact)의 효과

  사회심리학에서 유명한 이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접촉 이론(contact theory)'이라는 것입니다. 접촉 이론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노년층이나 장애인, 성적 소수자, 소수 민족, 외국인 노동자 등 다양한 외집단(outgroup)에 대한 갖가지 편견에 노출되어 있는데, 이러한 편견은 외집단의 구성원과 직접적으로 만나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서 해소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처음에는 특정 외집단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내집단(ingroup)이 아니므로 관심도 없어 매체나 소문 등으로 습득하는 외집단에 대한 근거 없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무척 취약합니다. 하지만 막상 외집단의 구성원과 직접 만나서 대화도 나누고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등 상호작용의 기회가 있다면, 실제 해당 외집단의 구성원이 내가 기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나 편견과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직접 만나보기 전까지는 ㅇㅇ할 줄 알았는데, 막상 만나보니까 그렇지 않군' 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외집단의 구성원, 그리고 그 외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편견의 정도는 줄어듭니다.


  실제로 접촉 이론은 기존 여러 심리학 연구들을 통해 수차례 검증되어 왔습니다. 접촉 이론이 혹시 다른 제 3의 변인에 의해서 그 효과를 보이는 것은 아닌지에 관한 다양한 이의 제기들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다양한 조건에 걸쳐 접촉 이론의 효과성은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어 오고 있습니다. 또한 접촉의 효과를 유도함에 있어 반드시 '물리적인 형태의 접촉'이 수반될 필요는 없다는 연구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확장된 접촉(extended contact)이라는 것으로, 외집단의 구성원과 물리적으로 만나 교류하는 과정이 없더라도 단지 나 이외에 다른 내집단 구성원이 외집단의 어느 한 구성원과 친분을 나누고 있다는 정보만 접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외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편견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접촉 이론을 검증해 온 사회심리학자들은 접촉 이론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계속 지적해 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접촉 이론의 실질적인 활용성과 관련되는 부분으로서, '접촉의 기회'가 현실에서 얼마나 보장될 수 있느냐에 관한 문제입니다. 접촉 이론을 실생활에서 적용하기 위해서는 무슬림이나 소수 민족, 성적 소수자 등 각종 고정관념/편견에 노출되어 있는 대상과 직접 만나고, 교류하는 과정이 있어야만 하는데 과연 실제로 이러한 대상들을 만날 기회가 얼마나 자주 발생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전면적으로 대규모 미팅(?) 등의 행사를 의도적으로 기획하고 추진하지 않는 한, 실생활에서 접촉 이론의 효과가 나타나기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확장된 접촉(extended contact)의 경우에는 물리적 접촉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전반적으로 여러 외집단들과의 만남 기회가 제한적인 이상 확장된 접촉 역시 실제 접촉의 기회라는 측면에서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접촉 이론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심리학자인 Turner, Crisp, Lambert는 보다 확장된 형태의 한 가설을 제안합니다. 이른바 상상 접촉(imagined contact)이라는 것으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접촉하고 교류하는 일련의 과정이 전혀 포함되지 않고 단지 그러한 과정을 머리 속에서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기존 접촉 이론 관련 연구들에서 보고된 접촉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수행된 여러 연구들을 통해 상상 접촉의 효과성은 확인되었습니다. 상상 접촉이 활용된 연구에서 실험 참여자들은 임의적으로 두 개의 집단(실험집단인 상상 접촉 집단 vs. 통제 집단)에 배정됩니다.  상상 접촉 집단의 참여자들은 실험 진행자로부터 노인(혹은 무슬림/성적 소수자 등)과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도록 지시를 받았고, 통제 집단의 경우에는 외집단 구성원과의 접촉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자연 풍경에 관한 상상을 해 보도록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상상 절차가 끝난 이후, 실험 참여자들은 노인(혹은 무슬림/성적 소수자 등)에 대해 얼마나 긍정적으로 인식하는지에 관한 문항들에 응답합니다(종속 변수).


  연구 결과는 상상 접촉의 효과성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상상 접촉을 수행한 집단은 통제 집단에 비해 노인(혹은 무슬림/성적 소수자 등)에 대해 보다 더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기존 접촉 이론(contact theory), 확장된 접촉 이론(extended contact theory) 못지 않게 상상 접촉(imagined contact) 역시 유사한 효과를 유도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였습니다. 상상 접촉이란 어떠한 물리적인 전제 조건이 없어도, 언제 어디에서건 단지 눈을 감고 상상해보는 과정만으로도 구현되는 것으로 기존 접촉 이론들이 가지고 있던 '만남의 기회'라는 제약을 극복한, 보다 효율적인 편견 해소 방략으로 각광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상 접촉의 효과성은 아마도 기존 연구에서 다루어졌던 대상들인 무슬림, 노인, 성적 소수자, 소수 민족 등 뿐만 아니라 편견,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보다 다양한 대상들에 대해서도 유사한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기대됩니다. 차후 상상 접촉에 대한 연구들은 이렇게 기존 검증되지 않았던 다양한 대상들에 대한 효과성을 검증되는 방향으로 수행되어, 상상 접촉의 효과의 크기나 적용 범위를 넓게 확인하는 방향으로 관련 연구들이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 출처: Turner, R. N., Crisp, R. J., & Lambert, E. (2007). Imagining intergroup contact can improve intergroup attitudes. Group Processes & Intergroup Relations, 10(4), 427-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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