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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은 냉철하다

심리학과 가치 중립성

  어디에서인가 심리학자를 설명하는 재미있는 비유를 보았던 것 같습니다. 다수의 남성들이 바(Bar)에 앉아 있는 가운데, 아름다운 여성이 갑자기 바에 들어선다면 대다수의 남성들이 그 여성을 쳐다보겠죠. 하지만 그 가운데 다른 남성들과 같이 그 여성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 여성을 쳐다보고 있는 남성들을 관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심리학자일 거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사실, 심리학자에 대한 이러한 비유 속에는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이 어떠한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는지에 관한 중요한 사실이 담겨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과학(science)은 가치 중립적이라고들 합니다. 과학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관찰하고, 기술하며, 예측과 통제의 가능성을 제공할 뿐, 정립된 과학적 진실들이 인간 사회 속에서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것까지 말해주지는 않습니다(물론 과학이 진정으로 가치 중립적인가 하는 물음이,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제기될 수도 있습니다만 이 부분은 굳이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물론 심리학도 과학이기 때문에, 가치 중립적입니다.


  때문에 심리학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가치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상으로부터 한 걸음 멀리 떨어져서 냉철하고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죠. 사실 대학원에 와서 본격적으로 심리학 연구들을 접해보게 되면, 처음에는 '심리학이 가치 중립적이다'라는 말이 잘 와닿지 않고, 낯설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심리학은 인간을 위한 학문이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지식을 제공한다'라는 관념들이 정작 심리학 연구 안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담/임상심리학 등 내담자의 정신 건강 증진과 삶의 변화를 지향하는 구체적인 목적성이 있는 분야라면 그런 느낌은 덜 할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다른 과학 분야들과 달리 심리학에서는 가치 중립성을 지켜나간다는 것이 특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을 다루는 학문이고, 그 학문을 발전시켜나가는 주체 역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인 주체가 다른 인간들의 심리적/행동적 특성을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며 검증하는 과정에는 인간이기 때문에 저지를 수 있는 다양한 편향(bias)들이 개입되기 쉽습니다. 인간이 인간의 일을 다룸에 있어 자신이 바라는 어떠한 욕구를 완전히 통제하고, 철저히 객관적인 태도로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인간'을 위한 학문이면서도, 철저히 '인간'을 위한다는 어떠한 목적성을 배제한 채로 연구를 진행하고자 노력합니다. 연구 결과에 대한 활용 가치를 고민하는 단계가 아닌 이상, 적어도 이론적 바탕에 근거한 연역적 가설 도출 및 연구 설계와 검증 단계에 있어서는 연구 주제에 관한 '당위적인 주장'들은 배제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때때로 심리학 연구 논문들을 읽고 있다보면, 기술의 냉철함과 엄격함, 딱딱한 논리 체계 등으로 인해 심리학이 인간을 위한 학문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예들 들어, 이타심이나 도덕성에 관한 여러 심리학적 연구들은 이타심, 도덕성이라는 것이 사실은 진정으로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이기심'의 다른 형태라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습니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이 이타심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은, 어떠한 악의적인 목적성을 가지고 그러한 결과를 내 놓은 것은 아닙니다. 엄격한 과학적 방법론을 거쳐 도출된 분석 결과가 그러한 방향성을 나타내고 있었고, 다만 그것을 정리해서 보여준 것 뿐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연구 결과를 보고, 섣불리 관련 연구를 진행한 심리학자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거나 이기적이라는 식의 판단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요컨대, 심리학은 당위성을 주장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심리학은 그저 인간에 관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섣불리 감상에 젖지 않습니다. 잘됐다거나 잘못되었다도 하지도, 좋다거나 싫다거나 그런 말은 잘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결과를 어떻게 이해할 지에 대해 그저 독자들의 판단에 맡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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