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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다루는 시간

심리학의 시간 범위(spectrum)

  일전에는 심리학의 분석 단위(unit of analysis)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심리학이 다루는 시간 범위(spectrum)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거시 영역 혹은 미시 영역 중 어느 측면을 '관점'으로서 받아들이는지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해당 학문이 얼마나 긴 시간을 포괄하는지 또한 해당 학문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1분, 1초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자연 과학 계통의 학문이 있는가 하면, 보다 긴 시간 흐름에 주목하는 역사학 등의 학문이 존재하듯 각 학문들은 분석 단위 뿐 아니라 시간 범위에서도 다양하게 구별될 수 있습니다(물론 하나의 학문 영역이라 할 지라도 세부 분과에 따라 시간 범위가 다양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심리학이 다루는 시간의 범위는 어느 정도나 될까요?


  기본적으로 심리학이 다루는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일생에 해당하는 시간이 곧 심리학에서 다루고 있는 시간 범위가 됩니다. 즉 인간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약 1세기가 조금은 못 되는 시간 내에서의 인간의 모습들, 그리고 변화 과정 등에 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죠. 심리학 가운데서도 이러한 심리학의 시간 범위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하위 분야가 바로 '발달심리학(developmental psychology)' 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성격(personality)의 형성, 변화 및 세대 간 전달 등에 초점을 주로 맞추고 있는 '성격심리학(personality psychology)' 역시도 심리학이 다루는 시간 범위를 잘 보여주지요.


  한편 여타의 심리학 분과들과 다르게 사회심리학(social psychology)은 인간을 둘러싼 '상황 요인'에 주목하는 학문으로, 태동 초기에 기존 심리학이 다루고 있던 시간 범위를 포함한다는 문제에 있어 크나큰 어려움에 직면하였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잘 알고 계시다시피 시간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흐르는 것이고, 시간의 흐름이란 거시적이든 미시적이든, 필연적으로 모종의 변화를 수반합니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사회심리학이 내세우는 '상황 요인'이라는 것 역시 시간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사회심리학은 '상황 요인'을 섣불리 고정화시켜 심리학 설계 속으로 가지고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상황 요인'을 인간을 이해하는 변수로서 정립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이론적 틀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던 것이죠(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바로 심리학자 Kurt Lewin의 '장 이론(field theory)'입니다). 이렇듯 시간 범위란 특정 심리학 분과에서는 그 태동기와 함께 매우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문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잠깐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신체가 적응과 자연 선택 과정을 통해 진화되어 왔다면, 필시 인간의 신체 중 일부이자 인간의 정신 과정을 담당하는 구조인 '뇌' 역시도 진화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라는 인식으로부터 태동된, 비교적 신생 학문입니다. 인간의 협동, 갈등 상황이나 이타성, 사회 교환 양태, 혹은 상이한 남녀의 짝짓기 전략 등 인간 사회의 다양한 모습들의 진화적 근원을 추적하는 학문이지요.


  진화심리학은 심리학의 시간 범위를 논함에 있어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발전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찰나(사회심리학)을 넘고, 인간의 일생(발달심리학)을 넘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수십-수백만년의 시간 범위를 심리학 속으로 끌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진화심리학, 그리고 진화심리학적 관점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인간의 심리적 특성, 행동적 특성을 설명하기 위한 또 한 가지의 도구를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머나먼 시간 동안, 생의 유지와 번식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진화되어 온 인간의 다양한 적응 양태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심리적 특성과 행위를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보다 방대한 시간을 다룰 수 있게 됨으로 인해, 심리학의 가능성은 한 층 더 무궁해진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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