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연구)계획서에는 '무엇을' 써야 할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딱히 정해진 것은 없다. 분량이나 형식, 내용 면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곧, 학업(연구)계획서야말로 다른 지원자들과 차별화되는 여러분만의 강점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는 기회라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 대학원 입시에 임하다 보면 여러분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지필고사, 영어시험, 전적대 성적, 어학점수 등 정량적인 지표들을 통해 그런 것을 드러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며 그나마 여러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야는 자기소개서, 학업(연구)계획서, 그리고 10-15분 남짓의 면접뿐이다. 특히 자기소개서나 학업(연구)계획서에서 나름의 소신을 충분히 어필하지 못한다면 서류 탈락으로 이어져 면접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므로, 대학원 입시 과정에서 학업(연구)계획서의 중요성이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학업(연구)계획서를 작성할 때, 여러분은 기본적으로 여러분 자신다운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관심 주제에 대한 여러분만의 깊은 통찰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라. 어떻게 하면 기존 연구 흐름에 여러분만의 새로운 것을 더할 수 있을지 십분 고민해보라. 여기에 더해 가능하다면 심리학과 관련된 여러분만의 독특하고도 소중한 경험과 감상들을 담아낼 수 있도록 노력하라. 학업(연구)계획서에 필요한 기본적인 내용들만 갖추어질 수 있다면 그 뒤는 어디까지나 여러분이 몫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다만, 지금부터 설명할 내용은 학업(연구)계획서를 본격적으로 작성하기 전에 여러분들이 반드시 해 두어야 하는 최소한의 준비 사항에 대한 것이다.
분량, 형식, 내용 면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하지만, 학업(연구)계획서 안에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포함되어야 한다(대학원에 따라서는 학업(연구)계획서 작성에 대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곳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학업(연구)계획서 작성 전, 반드시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지정 양식'이나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는지를 먼저 확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① 현재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②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까닭은?
③ 이 주제를 연구하기 위한, 지금까지의 준비 사항은?
④ 졸업 후, 어떤 일을 하길 희망하는가?
위 항목들 가운데 특히 여러분들이 공을 들여야 하는 부분은 바로 ①, ②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즉, 여러분이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분명히 답을 할 수 있다면 그 학업(연구)계획서는 기본적으로 잘 쓴 학업(연구)계획서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①, ② 항목을 작성할 때 어떤 부분에 유념해야 하는지 한 번 살펴보자. 먼저 관심 주제의 경우, 무엇보다 여러분의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실제로 심리학 대학원 컨설팅을 하다 보면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관심 주제를 단지 '키워드'의 형태로서만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예1) 저는 '고정관념'과 '편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2) 저는 '행복'에 대한 연구를 해 보고 싶습니다.
예3) 저는 '우울'에 대해 공부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심리학의 세계에서 저러한 키워드들은 세부 연구 주제들을 묶어주는 '상위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자체가 연구 가설이 될 수는 없다. 한 번이라도 관심 있는 키워드가 반영된 논문들을 검색해보았다면 아마 잘 알 것이다. '우울'이라는 개념에 대한 세부 주제, 세부 연구 관심사들만 해도 수십만 건이 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비교적 국내/외에서 연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희소한 개념을 들고 오지 않는 이상, 단지 '우울'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고만 말한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학업(연구)계획서의 차별화에 실패하게 될 것이다. 단지 키워드만을 제시한다면, 교수들의 입장에서는 여러분이 도대체 '우울 분야' 내에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세부 주제에 대해 연구하겠다는 것인지를 알 도리가 없다.
그러므로 '우울', 가운데에서도 어떤 맥락, 어떤 조건들 하에서의 '우울'인지에 대한, 보다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처럼 한 걸음 더 들어가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반드시 먼저 해야 할 준비 사항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기존 연구들에 대한 충분한 탐색 기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논문 사이트에 들어가 '우울'을 키워드로 한 논문들을 검색한 후, 그것들을 충분히 읽어본 뒤에야 우울 연구에 대한 기존 연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으며, 여기에서 어떻게 나만의 차별화된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또한, 평소 막연하게만 꿈꾸어왔을 뿐, 구체적으로는 잘 알지 못하던 관심 주제가 실제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해당 주제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더할 수도 있으며, 이상과 현실이 다름을 깨닫고 해당 주제에 대한 흥미를 거둬들이고 새로운 관심 주제를 찾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아직 학업(연구)계획서를 작성할 시간이 충분하다면, 관심 주제에 해당하는 국내/외 논문들을 읽어나가며 여러분만의 연구적 관심사를 정교하게 갈고닦아 나갈 것을 권한다. 그동안의 연구에서는 주로 어떤 독립변인, 종속변인이 활용되었는지, 각 변인들에 대한 측정 도구로는 어떠한 것이 있었는지 등을 각 논문 별로 정리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그동안 가장 빈번하게 연구되었던 변인,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었던 측정 도구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라.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고된 작업이 될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러한 과정은 분명 여러분의 학업(연구)계획서의 내실을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나 학업(연구)계획서의 제출 기한은 다가오고, 많은 논문들을 읽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면 관심 주제에 대한 리뷰 논문이나 메타 분석 논문들이라도 반드시 챙겨 읽은 후, 학업(연구)계획서 작성에 임하기 바란다. 리뷰 논문과 메타 분석 논문에는 해당 주제에 대한 기존 연구들이 정리/요약되어 있기 때문에,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기존의 연구 흐름을 가늠하기에 무척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관심 주제를 선택하게 된 이유'를 작성하는 요령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관심 주제 선택의 이유는 크게 세 측면으로 나누어 서술될 수 있다. 학술적인 이유, 사회적인 이유, 그리고 개인적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먼저 학술적인 이유라 함은, 여러분이 제시하고자 하는 연구 방향이 기존 연구 흐름과 어떻게 차별화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말하는 것이다. 즉, 학술적인 이유에서 여러분은 변인이나 측정 도구, 실험 설계, 연구 대상, 연구 모형, 이론적 배경 등 가운데 어떤 부분에서 여러분만의 차별점이 생기는지를 분명히 밝혀줄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사회적인 이유란, 현재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가 사회적으로 왜 중요한지를 언급해야 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우울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는 신문 기사, 통계 자료 등을 인용하는 등 지금 현재 왜 '우울 증상'의 이해와 해결에 사회적 역량이 더해져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면 좋다. 개인적인 이유란, 특별히 여러분이 해당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계기와 그 과정에서의 느낌, 깨달음 등을 어필함으로써 해당 주제에 대한 여러분 간의 깊은 관련성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학업(연구)계획서 작성 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정리하자면 학업(연구)계획서에 딱히 정해진 틀 같은 것은 없다. 가능한 여러분만의 차별점이 드러날 수 있도록 작성하는 것이 핵심임을 기억하라. 다만 기존 연구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한 걸음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려는 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학업(연구)계획서가 결국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역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