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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꼭 그 주제여야 하는가?'

  여러분은 무엇을 연구 주제로 삼고 싶은가? 이는 연구계획서를 쓰기 위해서라면, 아니 애초에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고자 한다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사실 연구 주제의 선정이란 우선 여러분의 학문적인 관심사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장차 연구자로서 여러분이 어떤 길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를 가늠토록 만들어주는 중요한 이정표의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여러분은 연구 주제를 선정할 때, 당장 입맛에 맞아 보인다는 이유로 쉽게 고를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그간 가지고 있었던 흥미와 적성, 타고난 역량, 미래 계획 등을 두루 고려려하는 가운데 신중하게 선택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연구 주제를 선정할 때는 대략 다음과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 '누군가 시켜서가 아닌, 오롯이 여러분 스스로가 원하는 바는 어떤 것인가?', '그것을 특별히 희망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장차 그것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물질적인 성과와 더불어 그것이 여러분의 ‘자기완성’에 기여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던져야 할 질문 한 가지. '꼭 그 연구 주제여야만 하는가? 그 주제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는 뭔가?' 단지 취업이 되지 않는 데다가 마냥 취업준비생으로만 하루하루를 보내기 뭐 해서, 학력을 ‘세탁’하고 싶어서, 미래가 불안하니까 뭐라도 공부해야 할 것만 같다는 조급함에 대학원 진학의 길을 떠올린다면 그때는 아직 대학원 진학의 때가 아니라 할 것이다. 오직 여러분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나름의 판단이 섰을 때, 그때가 바로 적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원은 여러 명 가운데 한 명이 아닌, 오직 여러분 스스로의 이름으로 세상에 서고 싶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는 선택지라는 것을 부디 기억하기 바란다.

     

  그러나 해보고 싶은 연구 주제를 고르는 것도 잠시, 안타깝게도 실제로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주제를 다루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들이 여러분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정말로 운이 좋아서 내가 희망하는 연구 주제를 다루고 있는 연구실을 발견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대부분은 그렇지가 않으니까 말이다. 만약 여러분의 소신이 하찮은 것이었어서, 쉽게 내다 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여러분의 적성, 흥미, 장래가 두루 반영된 소신이었다면, 그럴수록 현실과 ‘타협’ 해야 한다는 사실이 보다 무겁게 다가올 것이다. 도무지 하고 싶지 않은 연구 주제라도 일단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연구 주제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문만 두드리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대학원을 고르고 연구 주제를 고르면서 타협을 더 중시할 수도, 소신을 더 중시할 수도 있다. 즉, 절대적으로 우선시 되어야 할 가치는 없다. 그것은 당위적으로 누군가 다른 누군가에게 비난을 가할 수 있는, 그런 류의 선택이 아니다. 현실적인 이유들 때문에 내가 '타협'하겠다는 데 누가 뭐라 할 것인가? 그 사람이 내 현실적인 여건들을 책임져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오래도록 간직해 왔던 소신이 있어 내 갈 길을 가고자 한다는데 과연 누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봤다는 듯,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간섭을 한단 말인가? 


  결국 궁극적인 선택은 여러분 자신의 몫이 되어야만 한다. 정리하자면, '소신'이 소중한 만큼, '타협' 역시 소중할 수 있다.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친 여러분 스스로의 입장을, 대학원 교수님들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느냐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즉, 소신을 더 우선시했다면,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반대로 타협의 길을 선택했다면 어떤 이유에서 그러한 타협이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나름의 '그럴듯한 이유'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학원 입시 과정에서 여러분들은 필시 그러한 요구들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학업(연구)계획서와 자기소개서에 그 부분에 대한 소명(疏明)이 포함되어야 할 것은 물론이다. 대학원 면접에서도 여러분은 대개, 그와 유사한 요구들을 마주치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나는 본질적인 비판이 아닌,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의 관점에서 여러분에게 조언을 드려보고자 한다(다시 말해 여러분 나름의 철학과 소신,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님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내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다음과 같다. 대학원이나 연구 주제를 선택할 때는, 만약 여러분이 소신을 보다 중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더라도 완전히 소신으로 돌아서지는 말기 바란다. 어떻게든 대학원의 문턱에 일단 발을 들여놓아야, '뒤'를 바라볼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유경험자인 나의 생각이다. '합격 가능성'이라는 것, 일단 학계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소신'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일 수 있음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그렇다면 만약 여러분의 소신과, 교수님의 소신이 충돌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는가?


  교수님의 입장에서는 사실 교수님의 연구 주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주제를 여러분이 들고 오는 경우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우선, 교수님 자신의 관심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당장 마음이 가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리고 꼭 그 사람이 아니어도, 교수님 자신의 관심 분야를 연구하고 싶어 찾아왔노라고 말하는 다른 지원자들이 한가득인데, 어찌 그 사람에게 큰 관심을 보이기가 쉽겠는가? 거기에 더해 설사 교수님께서 그 학생을 선발하기로 결정하셨다 하더라도 그 학생 입장에서는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희망하는 연구 주제는 교수님께서 잘 모르는 연구 주제일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깊이 있는 연구 지도를 받기 어려울 가능성 역시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교수님 등 선배 연구자의 도움 없이, 초짜 연구원 혼자 스스로 원하는 길을 개척할 수 있는가? 안타깝게도 그건 더더욱 어려운 길이다. 


  그러므로 내가 가장 추천하는 것은, 일단은 여러분의 소신은 살리되 가능한 교수님의 연구 주제와 타협을 보라는 것이다. 대학원 컨설팅을 의뢰해 오신 분들께, 때로 타협을 제안하면 그것을 곧 소신을 꺾으라는 이야기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뜻으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정녕 여러분들이 그만큼 소중히 생각하는 연구 주제라면 아직 설익은 상태로 밖에 꺼낼 것이 아니라, 일단은 소중히 품에 아껴둘 줄 알아야 함을, 그렇게 언젠가 소신을 펼칠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그 소신을 굳이 ‘지금’ 주장해야만 할 필연적 이유는 없다. 당장에는 속이 시원하겠지만, 그러다 여러분은 대학원의 문턱조차도 밟지 못할 수 있으며, 소신을 펼칠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아직 모든 것이 부족할 때, 어설프게 소신을 좇다 실패하느니 차라리 충분한 실력과 경력이 갖추어진 후, 즉 만반의 준비가 되었을 때 여러분 자신의 길을 본격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낫지 않겠는가? 연구자로서의 실력을 갈고닦으면서, 동시에 여러분들은 여러분만의 소신을 함께 갈고닦아 나가면 된다. 여러분이 성장함에 따라 여러분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그 소신을 보는, 여러분 자신의 눈 또한 달라져 있을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일단 대학원생이 되기 전 여러분의 소신을 기록해둔 뒤, 이후 대학원 생활에 익숙해졌을 때 다시 한번 그 소신을 꺼내어 읽어보라. 그 때라면 새삼 깨닫게 될지 모른다. 발상 그 자체는 훌륭했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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