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책을 고를 때 고려해야 할 부분들
심리학만큼 온갖 '사이비'가 판을 치는 학문도 드물다. 아무런 타당도, 신뢰도 검증을 거치지 않은 심리테스트들이 '심리테스트'라는 이름을 달고 나와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 또 엄격한 심리학적 근거도 없이, 단지 '마음'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심리-'라는 접두어를 붙여 고객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심리학적 원리에 입각한 학습 프로그램, 교육 프로그램이라길래 들여다보면 어디선가 어설프게 보고 들은 내용을 짜깁기한 것일 뿐, 그런 내용들이 어떠한 학술적/이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설명도 없다. 때때로 '심리학을 내세우는 근거가 무엇이냐?' 고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단지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해 봤고, 효과를 봤다', '나는 이러한 방법으로 성공했다. 믿고 한 번 따라와 보라' 수준을 벗어나질 않는 것이 현실이다.
'심리학'이라고 하니 믿고 책을 사 보았는데, 정작 알맹이가 없어 크게 실망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 도대체 이 내용이 어떻게 심리학과 연관된다는 것인지 의문투성이인 책, 심리학자들이 주장한 내용이라고 해놓고 이렇다 할 근거 한 줄 제대로 제시하지 않은 책, 때로 심리학 이론을 가지고 왔다 치더라도 그 이론이 갖는 본래의 의미와는 동 떨어진 주장으로 독자들을 호도하는 책 등등 심리학이라는 명칭을 함부로 남용하는 사례가 우리 주위에는 이미 차고 넘친다. 문제는 이러한 사이비 심리학에 실망한 나머지, 독자들이 심리학이라는 학문 그 자체, 혹은 심리학자라는 직업에 대해서까지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실 심리학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로서는 스스로가 읽고 있는 그 책이 정말로 심리학과 관계된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저 책 제목에 '심리학'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어서, 저자 소개란을 보니 저자가 나름 심리학에 대해 전문가라는 것을 어필하는 것 같아서 그저 막연히 '심리학 책이 맞는구나'하고 쉽게 믿고 마는 것일 뿐. 따라서 온갖 사이비 심리학이 득세할수록, 심리학 전공자로서 심리학 책을 고르는 방법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Guide)가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선량한 독자들이 자극적인 문구들에 휘말려 잘못된 정보를 곧 과학적인 정보로 오인하여, 그들의 시간과 노력을 애꿎은 곳에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이 심리학 책이며, 또 무엇이 심리학 책이 아닌가. 분명한 기준으로 가를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워낙 방대한 데다가, 지금도 곳곳에서 심리학과 새로운 어떤 것을 결합하려는 시도들이 꾸준히 있기 때문에 어제는 비록 심리학이 아니었어도, 먼 훗날에는 심리학의 한 분야로 당당히 인정받게 될 내용들이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독자들이 그러한 '잠재력'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식견이 갖춰줬을 때의 일이다. 심리학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우리들은 먼저 '기본적인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지금껏 심리학자들이 다져온 길에 충실한 다음에야, 그러한 탄탄한 배경을 기반으로 새로운 영역을 고민해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소개할 것은 심리학 책을 고를 때 반드시 고려했으면 하는, 몇 가지 요소들에 관한 것이다.
1. 저자의 이력을 확인하라.
저자가 심리학과 관계된 이력들을 얼마나 충실히 쌓아왔느냐는 그 책이 가진 심리학적 깊이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가늠 요소가 된다. 심리학 관련 학력이나 자격 사항, 기타 경력 등을 꼼꼼히 확인하라. 물론 반드시 심리학 관련 경력이 있어야만 심리학 책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련 경력이 풍부함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글을 생산해내는 이도 있을 것이고, 제도권에서의 심리학 교육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음에도 훌륭한 심리학 글을 쓰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심리학 관련 경력, 더 정확히는 대학원 이상의 연구 경험이 있는 저자들이 쓰는 글이 상대적으로 더 신뢰로울 때가 많다. 심리학의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서의 경험은 절대 무시 못할 요소이기 때문이다. 한편, 심리학이나 사회학, 철학, 역사학, 자연과학 등 각 학문들은 고유의 관점(perspective)이나 분석 단위(unit of analysis)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심리학적으로 쓴다 한들 사회학자가 쓰는 심리학 책, 철학자가 쓰는 심리학 책과 심리학자가 쓰는 심리학 책은 세상, 그리고 사람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결'이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2. 주장의 출처를 꼼꼼히 확인하라.
책의 본문을 훑어보았을 때, 각주나 미주, 혹은 인용 기호들이 존재하는가? 만약 그런 것이 전혀 없다면 그 책은 과감히 패스해도 좋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출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책의 내용이 저자 혼자만의 주관적인 생각이라는 의미다. 설사 관련 자료들을 참고해 저술했다 하더라도 블로그나 인터넷 웹페이지, 혹은 유언비어 등 어딘가 '떳떳지 못한' 출처에 따른 내용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소위 심리학의 대가라 불리는, 유명하고 학식이 깊은 심리학자들도 글을 쓸 때는 절대 다른 사람들의 주장들과 각각의 출처들을 빼놓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의 주장들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자신의 생각을 새롭게 몇 줄 더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글을 쓴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결코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다. 적어도 심리학을 조금이라도 연구해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상식'이다.
3. 심리학 용어들을 확인하라.
미국 등에 비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심리학의 불모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국내 심리학 전문가들이 책을 쓰는 것 못지않게 상당수 외국의 심리학 서적들이 번역되어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되고 있다. 문제는, 책을 쓴 외국 저자가 심리학 전문가라 하더라도 정작 번역가가 심리학에 대해 무지하여 책의 내용을 저술 목적과 의도에 맞게 충실하게 번역되지 못하는 경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가령 심리학 용어들을 번역자 주관대로 번역해버려, 해당 용어를 학술 검색으로 찾아보려 해도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만약 이때 번역 명칭과 영문 명칭을 병기해준다면 검색해보고 관련 학술적 근거를 확인하는 것이 수월한데, 그러한 최소한의 배려마저 없다면 도대체 이 책의 내용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해진다. 따라서 심리학 책을 고를 때는, 각종 심리학 용어들을 어떻게 번역되어 있는지, 특히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용어의 경우에는 영문 명칭들이 충실히 병기되어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4. 과감한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은 피하라.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누적적인(cumulative) 학문이다.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듯, 기존의 학자들이 쌓아 올려 온 연구 성과들의 탑에 새롭게 돌멩이 하나를 쌓아 올린다는 것이 곧 '새로운 논문 1편'의 의미다. 심리학사(史)에 실릴 정도의, 우리가 매우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심리학자, 유명한 심리학 이론이 아니라면 오늘날 대부분의 심리학 연구들은 모두 이러한 '돌멩이'에 해당하는 것들이다(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돌멩이'라는 표현이 결코 새로운 연구 성과들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의도로 사용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단지 오늘날에는 학계를 발칵 뒤집을 정도의, 그런 급진적인 연구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할 따름이다. 한편 여기에는 '연구 윤리'에 대한 연구자들의 인식 제고도 관련이 있다. 즉, 연구 윤리적인 이유에서라도 이제는 더 이상 밀그램(Milgram)의 복종 실험이 나타날 수 없다). 따라서 심리학 연구 일부, 심리학 이론 일부, 응용 심리학적 사례 일부를 들고 와서, 단지 이것으로 독자들의 고민을 '획기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단숨에', '비약적으로', '근본적으로' 날려줄 수 있다고 감히 주장하는 책들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