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부터 목표가 확고한 몇몇 이들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심리학 대학원 지원자들은 어느 대학원에 지원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 사실 '심리학 대학원'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해서 다 같은 대학원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심리학의 영역은 인문사회 분야부터 자연과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지나칠 정도로 방대하며, 그에 따라 심리학 대학원마다의 특색 역시 천차만별이다. 연구 분야, 세부 연구 주제, 연구 방법론, 커리큘럼, 졸업 후 사회 진출 현황 등등 어느 하나 같은 곳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심리학 대학원의 세계다.
지원자들이 고려해야 할 부분은 비단 연구, 혹은 학문과 관련된 것만이 아니다. 이른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요인들 역시 심리학 대학원을 고르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등록금, 거주 및 생활환경, 지리적 여건, 장학 제도, 내 스펙과의 비교를 통한 현실적인 합격 가능성 등등의 요인들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대상이다. 현실적인 요건들을 무시한 채, 오로지 학교 '간판'이나 연구 현황 등에만 매달린다면, 가까스로 심리학 대학원에 합격한다 하더라도 만족스러운 대학원 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전에 심리학 대학원 문턱에 발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심리학 전문가의 길을 포기해야만 할 수도 있다.
고려해야 할 요건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딱 맞는 심리학 대학원을 찾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평소 나 자신이 하고 싶었던 연구 주제들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도,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대학원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장학 제도나 생활환경이 잘 갖추어진 대학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천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대학원을 찾은 데다가 나 자신의 스펙 또한 훌륭하기까지 하다면, 심리학 대학원 입시에 대한 고민이 왜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지극히 대부분의 우리들에게는, 그러한 조건들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므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가운데 동시에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학문, 연구에 보다 비중을 둘 것인가? 아니면 현실적인 요건들을 더 중요하게 고려할 것인가? 당장 학자로서의 길을 더 염두에 둘 것인가, 졸업 후 직업적 전망에 대한 고민들을 더 안고 가야만 할 것인가? 과연 어떤 요인을 최우선 순위로 놓아야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여러 가지 생각들이 지원자들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한다. 대학원에 지원하기 위한 전형료는 의외로 만만치 않게 비싸고, 여러 곳에 지원하자니 입시 일정이 겹치는 경우가 생기므로 결국 각 지원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제한되어 있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지원자들은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덜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원하는 심리학 대학원을 찾기 위해서는 여러 각도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좋다. 대학원 진학과 관계된 인터넷 카페나 소모임 등에 참가해서 각자가 가진 입시 정보들을 공유하고, 함께 입시 전략을 수립해보는 것 역시 권장되는 방법이다. 만약 입시 과정에서 나와 비슷한 문제로 고민했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가 그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는가에 대한 귀중한 조언을 들어보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다. 대학원의 무지막지한 등록금이 마음에 걸린다면 대학원 유경험자들이 어떤 방법으로 등록금을 조달했는지 상세히 알아보라. 또, 반드시 하고 싶은 연구 주제가 있음에도 안타깝게도 그것을 다루는 대학원이 없다면 마찬가지로 대학원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로부터 그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고, 여러 가지 조언들을 확보하라.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대학원 진학 시 고려해야 할 각 요건들에 '중요도'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여러분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얻은 정보들마다,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둘 것인지에 대해서는 결국 여러분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무엇을 더 중요하게 고려할 것인가, 혹은 무엇을 덜 중요하게 고려할 것인가는 결국 개개인의 상황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여러분 스스로에게 '학문에 대한 열의'를 진지하게 물었을 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요건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면 기타 현실적인 요건들은 얼마든지 타협될 수 있는 요건들이 된다. 반대로 학자의 길을 걷는 것보다는, 대학원 경력이나 기타 경제적인 상황에 더 비중을 두고자 한다면 관심이 가는 연구 주제는 잠시 접어두고, 현재 대학원에서 다루고 있는 연구 주제들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인가의 문제는, 그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는 문제다. 많은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후 여러분 스스로가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답을 얻지 못하고, 타인들에게 '나는 학문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가요?'라고 묻는다면 그것만큼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어디 있겠는가? 혹은 '현재의 경제적 상황으로 대학원에 지원하는 것이 가능할까요?'라고 물어, 타인들이 조언을 준다 한들 얼마나 여러분의 성에 찰 수 있겠는가? 일단 여러분의 경제적 여건은 여러분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한정된 예산을 어떻게 분배하고 지출하느냐에 대한 계획 역시 여러분 자신에게 달린 일이다. 즉, 냉정히 말해 타인은 결코 자기 자신의 돈을 쓰는 것만큼, 자기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만큼 여러분의 돈과 미래를 걱정해주지 않는다.
비록 학문적 관심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비교적 현실적인 요건을 잘 갖춘 채 대학원을 다니든, 하고 싶은 연구를 하게 됐지만 힘껏 허리띠를 졸라매고 악착같이 버티게 되었든, 그 선택에 따른 결과를 책임지는 것은 다름 아닌 여러분 자신이라는 점을 명심하라. 외부 정보에 의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대학원은 사실 누구에게나 언제나 낯선 길이고, 미처 다 가 보지 못한 길이다. 실제로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대학원 진학에 뜻을 품고 실제로 대학원을 선택한 이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학원(graduate school)'이란 제도는, 인류가 만들어 낸 교육 체계의 최정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라. 결코 아무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아니다. 요컨대 대학원 진학의 길은 언제나 불확실하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어차피 아무도 모른다.
타인들이 여러분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타인들에게 아무리 조언을 구한다 한들, 그 조언에 실린 '책임의 무게'가 여러분 스스로가 가진 '책임의 무게'와 결코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정리해보자. 대학원을 고르는 것이 망설여지는가? 대학원을 고르기 전, 일단 여러분이 고려할 수 있는 온갖 요건들을 리스트화 시켜 보고 하나씩 하나씩 차분히 검토해보라. 중요도에 따라 요건들을 분류, 나열해본 후, 중요도가 특별히 낮거나 높은 요건이 있다면 '왜 그러한 중요도를 부여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한 번 글로 써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렇게 여러분의 생각이 분명히 정돈되고, 입장이 어느 정도 분명해 져야만 다른 사람들의 이런 저런 근거없는 조언들에 아무렇게나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단지 머리 속에, 불확실한 상태로만 남겨두었다가는 막연한 불안과 공포만 더 커질 뿐이라는 점을 또한 명심하라.